내 어머니는 올해 칠순이다. 그런데 ‘중딩’이다. 학교가 좀 늦었다. 방송통신중학교 3학년. 3년이 어찌 흐른 듯싶은데, 벌써 졸업반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구석이 없어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그래도 학교는 빠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여긴다. 방통중은 1주일은 인터넷(온라인)으로, 1주일은 오프라인(현장) 수업을 듣는다. 그러니 격주로 학교를 나가는 셈이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오프라인 등교일에 ‘외출’까지 끊고 다녀오는 분이 우리 어머니다. 참으로 투철한 사명감을 지난 ‘옛날 학생’ 버전이다. 매년 주는 개근상을 놓친 적이 없다. 공부도 잘한다. 방통중이라고 특정 과목만 공부하는 건 아니다. 여느 중딩이랑 똑같이 국, 영, 수는 기본이고 과학, 역사, 음악, 체육 다 한다. 실기까지 한다. 어머니는 매 학기 1등을 놓치지 않으셨다.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딴 아내가 매주(토요일 or 일요일) 과외 수업을 한다. 어머니 사전에 ‘공짜’는 없다. 배운 만큼의 과외비를 지불한다. 그래서 나도 주말이나 휴일 쉬고 싶어도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를 따라 시골집에 간다.
오 반장과 국회 본회의장에서 기념 컷.
동료 학생들은 열정 넘치고, 의지 다분한 모습에 3년 내내 어머니를 ‘반장’에 앉혔다. 이만하면 ‘장기독재’다. aka ‘오 반장’은 반장의 권한을 이용해 수학여행 겸 졸업여행을 국회로 정했다. 기자 아들이 10년 가까이 출입하는 곳이라고 열심히 자랑했으리라.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주말에 오 반장과 평균 연령 70대인 반원 20여 명과 졸업여행을 동행했다. 말이 동행이지 ‘일일 가이드’와 '찍사' 노릇을 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뒤따랐다. 오전 8시, 학교 정문에서 단체 사진을 박아 찍어 드리고 출발했다. 셔틀버스가 출발하기 전 신분증 검사를 했다. 이럴 땐 어디서나 꼭 한명씩 있다는 분이 나오기 마련. 한 분이 신분증을 차에 두고 오셨단다. 버스 출발 전이라, 얼른 가져오라고 한 뒤 기다렸다. 그나마 집에 두고 온 게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잠시 뒤, 차에 신분증을 가지러 간 ‘남학생’이 돌아온 뒤 차량이 출발했다. 10여 분쯤 갔을까. 한 ‘여학생’이 신분증이 없단다. 이 분은 집에 두고 왔단다. 하아~. 핸드폰으로 ‘정부 24’에 들어가면 손쉽게 주민등록 등본을 내려받을 수 있으련만, 나이 70이 넘은 ‘할머니 학생’에게 간편 인증은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재빨리 인터넷을 검색했다. 국회 의원회관에 무인민원발급기가 있다고 나왔다. 얼른 가서 거기서라도 서류를 떼야겠다고 생각했다.
20분이 지났을까. 아까 그 ‘여학생’이 조용히 물었다. 핸드폰으로 신분증이 왔다고. 같이 사는 아들내미가 찍어서 보내줬다고. 카톡을 보니 앞자리가 ‘4’로 시작하는 곱디고운 학생의 주민등록증이 보였다. ‘이거면 될 겁니다.’ 나는 주민번호 앞자리 ‘4’로 시작하는 여학생을 안심시켰다. 평균 연령 70대인 반원들은 마냥 들떴다. 차 안에서는 왁자지껄 수다로 넘쳤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졸업여행일 터. 그 나이 먹도록 자식새끼들 공부시킬 줄만 알았지, 본인들이 학교에 다닐 줄 상상이라 했을까. 힘들고 가난한 시절에는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고, 나이 들어 시집 장가간 다음에는 자식들 뒷바라지에 경황이 없었으니. 이제라도 만학의 꿈을 이루겠다며 노구를 이끌고 그 먼 데서 학교 다니는 ‘불타는 황혼’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오전 10시에 맞춰 예약한 국회 박물관. 학생들은 두 줄로 서서 경내를 참관했다. 요즘 초딩보다 더 말을 잘 들어 무척 감사했다. 국회 본회의장처럼 꾸며놓은 체험관에서는 실제 국회의원들이 앉는 의자에 앉아 터치스크린으로 표결도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에 앞서는 국회의장석을 꾸며놓은 포토존에서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을 찍었다. 어떤 분은 의사봉까지 들어 보이며 마치 국회의장이 된 것처럼 신나 했다. 박물관 참관을 마치고 텀블러 기념품을 나눠줬는데, 세상에 이런 것도 준다며 난리들 나셨다.
국회박물관에서 역대 의장 초상화를 보고 있는 학생들.
다음으로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박물관에서 본 모형 회의장이 아닌, 진짜 회의장. 본회의장에 들어선 학생들은 ‘여기가 뉴스에서 맨날 치구박구하는 데여?’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할머니 할아버지 학생들은 마냥 신기한지 방청석에 앉아 여기저기 둘러봤다. 이윽고 국회 해설사가 국회 본회의장 곳곳을 설명했고, 안에서도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다. 어딜 가나 마지막으로 남는 게 사진이라고. 본회의장 관람을 마친 일행들은 구내식당으로 이동해 돈가스로 점심을 드셨다. ‘국회에서 밥을 다 먹어 본다’고 호호, 하하거리며 맛있게 드셨다. 점심을 먹고선 한강 유람선을 타러 가신다고 했다. 그사이 2시간 간격이 있었다.
국회 동산인 사랑재와 국회 잔디마당에서 쉬시다 가시면 된다고 했다. 마침 사랑재에서는 야외 결혼식이 있었다. 학생들은 결혼식 구경이나 하고 가자며 줄줄이 올라갔다. 멋진 신랑과 예쁜 신부가 걸어 나왔다. 황혼의 학생들은 그 광경을 부럽게 바라봤다. 그들도 저런 시절이 있었으리라. 사모관대 쓰고 연지곤지 찍고 시집 장가가던 날이. 이제는 주름진 이마와 거칠어진 손일지라도 홍안의 시절이 있었으리라. 그렇게 나를 낳고, 키웠으리라. 유람선 타기 전에 볼일이 있어 작별 인사를 한 뒤 국회 소통관으로 향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려라.” 환갑이 넘은 노 선배의 말씀이 귓전에 닿았다. 겨우 반나절이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20여 명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 그분들께 감사했다. 내년에는 ‘고딩 엄빠’로 새 출발을 하는 그들이 건강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길 기도했다. 우리 오 반장도 열심히 달려라 달려~
저녁 무렵, 유람선 관광을 무사히 마치고 오셨다는 카톡 메시지가 왔다. ‘오늘 넘 애 많이 썼네, 사람들이 엄청 칭찬했어.’ 이런 문자를 받았으면, 나는 오늘 성공한 것이다. 언제 또 이런 걸 해 보겠나. 이들은 오늘 한 교실에서 만난다. 어제 여행지에서 있었던 일로 웃고 떠들며 몇 번 남지 않은 수업을 마치겠지. (방통중 졸업은 12월이다.) 천안중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 3학년 2반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