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가는 길

내가 강진에 간 이유_소설의 퇴고

by 류재민

강진에 가기로 했다. 남해 끝자락에 박힌 그 땅은 진즉에 갔어야 했다. 동으로 장흥, 서로 해남, 북으로 영암이 에워싼 땅. 남쪽 다도해에는 완도의 여러 섬이 흩어져 있는 땅. 강진은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다. 차를 몰고선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3시간이 넘는다. 버스로는 더 멀다. KTX 광주송정역에서 내려 광주로 가서 거기서 또 시외버스를 타고 가면 동선에 따라 길게는 강진 버스여객터미널까지 7시간 가까이 걸린다. 갈 엄두를 내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그 때문이었으리라. 그래도 가야 했다. 더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나야 할 누가 거기 있었던가? 아니면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던 여행? 그것도 아니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던, 만나고 싶은 누군가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떠난, 여행 같은 발길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천안아산역에서 출발하는 KTX를 타고 광주송정역에 내렸다. 역 근처에서 렌터카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소형차를 타고서도 강진까진 1시간 남짓 걸렸다. 백 팩과 캐리어를 뒷좌석에 싣고 홀가분한, 그러나 마음은 오래도록 마음에 품었던 여인을 만나러 가는 양 설레고, 떨리고, 긴장됐다. 여행을 떠나는 부류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즐기러 간다.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다. 또 누군가는 뜻하지 않은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정리하러 간다. 어느 정도 목적은 있다. 다른 누군가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간다. 내 이번 여행은 그중 마지막에 해당한다. 나에게는 강진에 가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강진군 대구면 고려청자 박물관에서.

강진은, 며칠 전 초고를 끝낸 소설의 무대 중 한 곳이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소설의 주 무대와 다름없을 만큼 비중이 많은 지역이다. 나는 강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래 놓고 강진을 배경으로 글을 쓰다니. 그건 작가로서 예의도, 염치도, 자격도 없는 처사였다. 아무리 소설이고, 아무리 초고라고 할지라도. 그 예의 없음과 염치없음과 자격 없음을 떨쳐내려고 나선 길이, 강진 행(行)이다.


소설 속 등장 인물인 마천왕이 일본으로 향했던 강진만. 강진군 도암면 가우도 출렁다리에서.

강진에 며칠 머물며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다녀보기로 했다. 틈틈이 초고를 다듬고, 보강할 요량이었다. 여행의 목적과 의도는 있었으나,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내 특유의 스타일이다. 어딜 가면 무작정 간다. 계획은 도착지에 가서 생각한다. 그래서 난감하고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게 습관이라고, 닥치면 어떻게든 된다는 식으로 넘기면서 이번에도 출발부터 했다. 길은 멀었으나,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심리적 거리는 이미 강진에 닿은 듯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