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여행 3번째 코스는 천년고찰 백련사. 만덕산 자락에 있다고 해 만덕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기록에는 통일신라시대 말기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건진 모를 일이다.
고려시대 숭불정책으로 잘 나가던 불교는, 조선시대 들어 억불정책으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백련사 역시 퇴보했다. 남해안 일대는 고려청자와 곡창지대로 약탈을 목적으로 한 왜구가 자주 출몰하는 바람에 입지는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임진왜란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등 지난했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맞으며 용케 버텨온 걸 보면, ‘천년고찰’이라는 말이 어울릴 법했다.
만덕산 백련사 일주문.
일주문 앞까지 동백나무 숲이 장관이다.
백련사는 천연기념물(1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이 유명하다. 강진 여행에서 첫 손을 꼽자면 백련사 동백나무 숲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백련사 사적비에도 ‘아름다운 숲’이라고 기록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누가 심었는지 모를 동백나무가 절 입구와 일주문부터 죽 이어졌다. 동백나무는 약 1,500그루 동백나무가 있는데, 높이는 대략 6~7m쯤 되고, 가장 오래된 나무 수령은 수백 년은 족히 되는 듯했다.
춘삼월에 핀 꽃은 이미 지고 없어 화려한 꽃길은 걷지 못했다. 대신 초록의 잎새와 곧게 뻗은 나뭇가지, 비자나무와 후박나무, 푸조나무가 가을 산사(山寺)를 찾은 중생을 마중 나온 듯했다.
내 소설에 만덕산과 백련사는 각각 ‘만수산’과 ‘천담사’로 등장한다. 한겨레와 조선일 기자가 마강진 교수와 함께 찾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연화 무늬 매병 청자가 숱한 풍파 속에서도 보존될 수 있던 배경이기도 하다.
백련사 동백나무숲 안내판.
만경루 앞 배롱나무. 10월 초 모습입니다.
대웅전(大雄殿)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 건물로 지어졌다. 추녀마다 4개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쳤다. 전면 2개의 주두(柱頭)는 용머리[龍頭]로 장식했다. 시왕전(十王殿)·나한전(羅漢殿)·만경루(萬景樓)·칠성각(七星閣) 등이 대웅전을 감싸고 세워져 있다.
대웅전에 들어가 방석을 깔고 부처님 앞에 무릎 꿇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어쩌자고 이렇게 찾아와 불상 앞에 앉아 있는지. 방석까지 가져다가 108배는 아니어도 18배를 하고 있는지. 부처님도 당황했으리라. 저 어린 중생은 어쩌자고 다짜고짜 찾아와 절을 하면서 ‘제 소설 대박 나게 해 주세요’라고 비는지. 한편으로 쯧쯧 혀도 찼을지 모른다.
내가 그날 백련사 부처님 전에 빈 건, 비단 ‘대박 기원’만은 아니었다. 심란한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달라는 소원도 4할은 넘었다. 18배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전화가 걸려 왔다. 내 주치의였다. 그는 일주일 전 피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설명을 시작했다.(나는 만성 당뇨로 매달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혈당이랑 혈압은 괜찮아요.” 그 말에 마음이 놓이는 듯하다가 “그런데..”라는 불길한 말 줄임표에 잔뜩 긴장했다. 크레아티닌 지수가 어떠니, 사구체가 어떠니 미주알고주알 혼자 떠드는 의사의 음성에 머리가 쭈뼛하고 가슴이 서늘했다. 결론적으로 신장(콩팥) 상태가 더 나빠졌으니, 다음번에 검사를 다시 해보자고 했다. 소변과 초음파 검사도 하자고 했다.
대웅전 댓돌에 앉아 주치의의 말을 하릴없이 들었다. 겨우 매달린 배롱나무 연분홍 꽃송이가 갈바람에 한들거렸다. 젠장할, 108배는커녕 말도 안 되는 부탁이나 하러 왔다고 부처님이 겁을 주려나 보려니, 그러다 또 하릴없이 심란해졌다.
대웅전 앞 만경루에서 바라본 배롱나무와 강진만 풍경.
심란한 마음을 부여잡고 대웅전 앞 만경루(萬景樓)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지역에서 온 산악회 모임인지, 동창생들인지, 한 무리의 중년 남녀 10여 명이 수다를 떨며 나와 절을 내려갔다. 단체의 수다가 떠난 자리에는 개인의 정적만 남았다. 활짝 열린 만경루에 걸터앉아 밖을 내다봤다. 아까 본 배롱나무 저 멀리 강진만이 눈에 들어왔다.
소설 속 백련사를 찾은 마 교수와 두 명의 기자는 만경루에서 두 번째 인터뷰를 했다. 마 교수는 사라진 청자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놓기 시작했다. 마 교수는 ‘천 개의 전설이 내려와 천담사,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어 만경루’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스님들의 공부방이었다는 만경루는 이제는 템플스테이와 사찰 행사를 주로 하는 공간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만 가지 경치까진 아니어도, 호젓하게 강진만 풍광을 만끽했다.
백련사는 여느 유명 사찰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다. 그래도 오랜 시간의 흐름을 따라 흘러 내려온 전설과 비밀도 많아 보였다. 주변에 식당은 없다. 그 흔한 사찰음식점도 하나 없다. 백련사는 그만큼 ‘작은 절’이었고, 그래서 내 배는 무척이나 고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