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가는 길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완성한 곳

by 류재민

백련사를 나와 다산초당으로 향했다. 안내판에는 절에서 초당까지 거리가 1km라고 적혀 있었다. ‘1’이란, 참 쉬운 숫자다. 하지만 평지에서 1km와 산길 1km는 체감도가 달랐다. 산길이 더 숨차고 벅찼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시로 나타났고, 육중한 체구를 온전히 감당했던 양 무릎은 그곳을 다녀온 뒤 결국 탈이 나 한참을 고생했다.


무튼, 평일의 산길에서도 인적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상수리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이미 떨어진 상수리가 곳곳에 굴러다녔다. 한낮에도 울창한 나무로 그늘진 숲 속은 스산했고, 주위는 오싹할 만큼 어두웠다. 상수리를 주워 먹는 청설모에도 깜짝 놀란 나머지 머리가 쭈뼛 섰을 정도니. (원체 겁이 많기도 하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에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야생 차밭.

다산초당 가는 길에는 야생 차밭도 있었는데, 관리를 안 해서 그런지, 계절적으로 찻잎으로서 기능을 다 해 쓸모없어서 그런지, 풀이 반이었다. 차밭을 지나고, 만덕산 기슭을 돌았을 때, 무릎이 시큰거리고 영 불편했다.


온 거리와 남은 거리가 딱 절반이었다. 돌아갈까,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목소리가 쟁그렁거렸다. 마침 한갓진 곳에 벤치가 있어 걸터앉아 고민했다. 다산초당까지 갔다가 다시 이 길을 그대로 돌아와야 할 텐데, 그러면 무릎 상태는 거의 작살 지경에 이를 수 있었다. 2주 뒤 10km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나로서는 심히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다산초당에 가기로 했다. 강진 오는 길도 어려웠는데, 백련사까지 둘러봤는데, 500미터만 더 가면 되는데, 기왕 왔는데, 또 언제 와서 볼 기회가 있을까, 그렇게 내 맘은 기어이 정약용의 유배지로 발길을 잡아 끌었다.


다산초당 주변에 세운 천일각. 멀리 강진만이 보인다.
'송풍루'라고도 불리는 다산 동암. 정약용은 여기서 찾아온 손님을 맞기도 하고, 목민심서 같은 집필을 하기도 했다.

다산초당은 정약용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한 곳이다. 초당에 닿기 전, 천일각(天一閣)이 보였다. 다산의 유배 시절에는 없었는데, 1975년 강진군에서 세운 누각이라고 한다. 정조대왕과 흑산도에 유배 중인 형(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허전한 마음을 달랬을 거란 생각에서 지었다고 한다.


천일각과 다산초당 중간에는 ‘동암(東庵)’이 있다. ‘송풍루(松風樓)’라고도 불리는데, 다산이 책을 쓰고, 찾아온 손님을 맞은 장소라고 한다. ‘서재 겸 사랑방’ 성격이지 싶었다. 그 유명한 목민심서도 여기서 완성했다.

천일각과 동암을 지나 드디어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다다랐다. 20분 남짓 걸렸을까.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뻑뻑한 두 무릎을 부여잡고 겨우겨우 도착한 그곳은, 예상외로 호젓하고 아늑했다. 호젓하고 아늑하다 못해, 어둡고 음침했다. 딱히 볼 것도 없었다. 그 흔한 새 한 마리 날아들지 않았다. 초당 옆 작은 연못 위로 산기슭에서 졸졸거리며 내려오는 물소리가 유일하게 고요와 적막을 깨고 있었다. 초당 안에는 다산 초상화 한 장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외롭고 쓸쓸한 정경이었다. 하긴, 유배지가 어디 화려하고 멋들어질 수 있으랴.


다산 선생은 이 길을 노상 오르내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돌아갈 길이 막막해졌다. 또다시 나무계단을 오르고 내려 1km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땅이 꺼져라,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어쩌랴, 가야 하는 길이거늘. 마음을 다잡고 발길을 돌렸다. 오는 길은, 가는 길만큼 험했고, 허기가 강진만 밀물처럼 밀려왔다. 저혈당 증세에 숨이 턱 막히고,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현기증이 자주 났다.


아무도 없는 산길에 쓰러지면 누가 발견하고 신고해 줄까. 덜컥 겁이 났다. 정신이 바짝 차리고 꾸역꾸역 발을 내디뎠다. 그럴 때마다 평평한 산길이 나타났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싶었다.


산길을 돌아 백련사 입구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깨달은 게 있다. 산길에는 계속 오르막만 있는 것도, 계속 내리막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 걸. 오르막과 내리막 사이에는 평지도 있다는 걸. 마치 내가 사는 이승의 길, 인생의 길처럼. 다산은 이 길을 오르내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평탄한 길이 아니기에, 자신의 처지와 위치를 확인하는 시간과 공간이 아니었을까, 얕은 해석도 했다.


다산초당은 내 소설에 등장하진 않는다. 마 교수가 자신의 별장에 찾아온 두 기자에게 내준 차, 그리고 그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갈 때 선물한 차가 바로 이곳에서 딴 것으로 설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무릎은 시큰거렸고, 뱃가죽은 기어이 등가죽을 만나게 하려는 것이냐며 투덜거렸다. 주린 배를 쥐어 잡고 차에 올랐다. 어디로든 가장 가까운 식당에 가기로 했다. 공깃밥만 열 그릇을 먹겠다고 다짐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가까운 곳에도 식당은 나오지 못했고, 끝내 모텔방 근처를 한참 돌다 겨우 한 끼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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