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강진기행 06화

맘씨도 솜씨도 좋은 강진 맛집 ‘조은식당’에 가다

엄마 같은 사장님은 밥도 같이 먹어 준다

by 류재민

다산초당을 둘러본 뒤 백련사 주차장을 내려온 시간은 오후 2시가 다 됐을 무렵이다. 새벽바람으로 내려온 탓에 아침도 못 먹고, 의도하지 않은 산행까지 했으니 몹시 시장했다. 일단 예약해 놓은 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 식당에 가기로 했다.


모텔방 주인은 입실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온 투숙객에 아무런 불평 없이 방 열쇠를 내줬다. 4만 5천 원짜리 방은 정말 그 정도 가격대처럼 생겨 먹었다. 신발장 입구에 캐리어를 던지듯이 놓고 밖으로 나왔다. 배가 얼마나 고팠는지 저혈당 증세와 함께 현기증이 일었다. 오후의 햇볕도 강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숙소는 강진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였는데, 근처에는 죄다 단란주점과 노래방 일색이었고, 그나마 보이는 음식점은 ‘브레이크 타임’이라나.. 어느 식당에 들어갔더니 홀에서 쉬던 아주머니께서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아주머니는 내가 신발을 신고 홀에 들어온 걸 보고 호되게 야단도 쳤다. 그러곤 “몇 명이 왔느냐?”라고 물었고, 나 혼자라고 하니, “한 명은 안 받는다”라고 했다. 본의 아니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해물찜 집이었는데, 1인분은 안 판다나.. 솔직히 그땐 10인분도 먹을 수 있었다.)


버스터미널 주변만 열 번도 더 돈 것 같다. 돌고 돌다 보니 내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니 짜증만 났다. 그때 눈앞에 신기루처럼 나타난 식당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조은식당 소주방’.


강진 도암 뽕잎 막걸리에 사장님의 손맛이 듬뿍 담긴 제육볶음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식당 앞 파라솔 아래 고무통에는 산낙지며, 바지락이며 각종 해산물이 호객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반찬 손질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한테 “밥 좀 먹을 수 있냐”라고 물었더니, 들어오란다. 4인용 테이블 세 개뿐인 단출한 백반집이었다. 제육볶음을 주문하고, 냉장고로 가 냉큼 막걸리 2병을 꺼내왔다.


지역 특산품인 뽕잎 막걸리가 내 속을 동하게 했다. 뽕잎이든 나뭇잎이든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뚜껑을 비틀어 열어 양은 대접에 술을 부었다. 누렇고 맑은술이 어찌나 반갑던지.


사장님은 얼른 바지락을 넣은 미역국부터 각종 반찬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그리고 잠시 뒤 제육볶음을 내왔는데, 양이 어찌나 많은지 서너 명이 족히 먹을 만큼 푸짐했다. “내 정신 좀 보소, 밥을 안 줘 부렀네잉. 쪼까 기다리쇼.” 사장님은 얼른 밥통에서 공깃밥 하나를 꺼내왔다.


“밥은 읍써도 되유.”

“왜? 배고프담서?”

“막걸리 있잖유.”

사장님이 내 앞에 앉았다. 자식뻘 되는 사내가 혼자 앉아 술이랑 안주를 먹고 있는 모습이 궁상맞아 보였나 보다. 그리고 내 앞에 있던 밥을 자기 앞에 가져가며 말했다.

“그럼 내나 먹어야겄다.”

“아유, 몇 신디 식사를 안 하셨대요.”

“쪼까 그리 됐네. 나 혼자 먹으면 거시기하니께 반만 잡숫소.”

사장님은 밥 반 공기를 뚝 떼다 내 앞에 놓았다. 이런 사장님이 어딨나. 사장님과 앉아 밥을 먹으면서 강진에 온 사연을 설명했다. 사장님은 강진 토박이라고 했다. 그리고 옛날 어르신들에게 들은 얘기를 들려줬다.

“거시기, 내가 어릴 적이 강진만서 일본으로 배 타고 다녔다고 들었어.”

“증말요?”

내 소설에 등장하는 마 씨 일가가 강진만(소설에는 장천만)에서 목선을 타고 일본에 갔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걸 실제 확인한 순간이다. 팩트인지는 몰라도, 강진에서 나고 자란 어르신은 ‘고급 정보’를 들려줬다.

사장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때, 누군가 내 등을 툭 쳤다. 홱 돌아보니 모르는 아주머니였다. 깜짝 놀란 사장님이 아주머니를 향해 “얼래? 누군지 알고?”라고 물었다.

내 얼굴을 본 아주머니는 사장님보다 더 눈이 똥그래졌다.

“아이고, 죄송해요. 같이 식사를 하고 있어서 사장님 아들인 줄 알았고만요잉.”

“괜찮어유. 그럴 수도 있쥬 뭐.”

“등치가 비슷해서..참말로 지송 하구먼요.”

“사장님 아들이 저랑 비슷하게 생겼슈?”

사장님은 나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유 참, 아들이라고 하면 되쥬 뭐.”

맞은편에서 가게를 한다는 아주머니는 영 어색했나 식당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막걸리 두 병을 게 눈 감추는 먹어 치운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육볶음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다.

“갈래유.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은 온 보람이 있으려면, 소설이 잘 됐으면 좋겠다고 덕담했다.

“베스트셀러 되면, 직접 사인해 갖고설랑 사장님 뵈러 올게유. 그때까지 건강하셔유.”

사장님이 흐뭇하게 웃으며 배웅했다.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버스터미널 앞 ‘조은식당’은 맛집이다. 밥과 반찬도 맛있지만, 그보다 더 맘씨가 ‘좋은’ 사장님이 있다.

맨 아래 '우리 집은 전 품목이 국내산입니다' 이 한 줄로 이 식당 검증은 끝!!

후기: 40분 만에 달랜 허기에 정신은 제자리로 왔지만, 낮술의 여파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저녁에는 근처 해장국집에서 잎새주를 먹었는데, 그 이후에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무튼, 그렇게 먹고 4만 5천 원짜리 모텔방에 들어가 아시안게임을 보다가 잠들었다. 밤 10시에 잤고, 새벽 6시에 눈 떴다.

keyword
이전 05화다산초당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