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강진기행 07화

모란을 기다리던 영랑 생가를 거닐다

아침 산책길에 만난 시인의 숨결

by 류재민

전날 과음에도 눈은 일찍 떠졌다. 밥 생각은 없었다. 간단히 씻은 다음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겼다.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모텔 주차장에 세워 둔 렌트카에 짐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시간은 오전 8시 40분. 숙소 근처 ‘영랑 생가’로 향했다. 차로 3분 거리였다. 전날 들렀던 ‘조은식당’에서도 걸어가면 10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영랑 생가는 군청이 있는 강진 읍내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생가를 따라 난 길가에 차를 대고 내렸다. 초가로 지은 생가 앞에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심어 있었는데, 수령이 꽤 오래된 듯 보였다. 담장 아래에는 시비(‘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우에’)가 세워져 있었다. 학창 시절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라는 제목으로 배운 기억이 있다. 의인법, 직유법, 대구법 어쩌구저쩌구하며.


시골 할머니 집같은 영랑 생가 모습.
안채에 영랑 김윤식의 초상화가 보인다.
영랑 생가와 세계모란공원 중간에 대나무 숲길. 산책하기 그만이다.

안채로 들어가기 전에는 더 큰 돌에 새겨진 시비를 만났는데, 그 유명한 ‘모란이 피기까지는’이다. 아, 내가 영랑 생가에 와서 이 시를 만나다니! 반가운 마음에 시비 앞에서 셀카부터 찍었다. 그리고 경건하고, 그윽하며, 설렘 가득한 눈빛으로 시를 읊조렸다. 모란이 피기까지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는 시인의 다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왜 눈물이 고였는진 모르지만, 나 역시 모란이 피는 봄을 기다리고 있나 보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생가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남성들은 주변에 풀을 뽑고, 여성들은 방과 마룻바닥, 마당과 창고 주변을 쓸고 닦았다. 영랑 생가는 중요민속문화재(제252호)다. 강진군이 지난 1985년 매입해 원형 그대로 보존 관리해 오고 있는데, 지역 어르신들이 청소 업무를 맡고 있나 보다.


오전 9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라 그런지 방문객은 나 뿐이었다. 생가 안에는 양복을 쫙 빼입은 영랑 초상화가 보였다. 어렸을 적에는 ‘영랑’이라는 이름에,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라고 해서 그가 여자인 줄 알았다. (모르긴 해도 나처럼 영랑이 여자인 줄 아는 사람이 꽤 될 거다.)


‘영랑(永郞)’은 호이고, 본명은 김윤식이다. 박용철, 정지용 등과 《시문학》동인을 결성해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에 시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언덕에 바로 누워」 등 6편과 「사행소곡칠수(四行小曲七首)」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나섰다. 그래서인지, 영랑 생가 앞에는 그들의 시문학 정신을 담은 ‘시문학파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담벼락에 영랑 바로 옆에 용아 박용철 선생 얼굴이 나란히 새겨져 있었는데, 어찌나 반가웠던지. 2년 전, 광주 여행길에 용아 생가를 들른 적이 있었다. 광주에서 만난 용아를 2년 뒤 강진에서 영랑 옆에서 만날 줄이야.


영랑 생가 뒤편으로 세계모란공원이 있다.
세계 모란공원 아래쪽에 있는 '사계절 모란원' 내부 모습.

생가에는 영랑이 시의 소재로 삼았던 샘과 장독대 등이 그대로 남아 있고, 뒤란 위쪽으로 동백나무, 그 위쪽으로는 대나무 숲길이 길게 나 있었다. 생가 위에는 ‘세계모란공원’이 있었는데,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에 산책길로 그만이었다.


10월이라 모란꽃은 없었지만, 아침 공기를 마시며 걸으니 숙취가 사라지는 듯 상쾌했다. 공원 아래쪽 유리온실로 된 ‘사계절 모란원’에 잠시 들렀다. 세계 각국의 모란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이었는데, 모란꽃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다양한 모란잎만 볼 수 있었는데, 꽃 피는 봄이 오면 탐스러운 모란꽃이 정말 아름다울 것 같다.


공원 위쪽의 구암정도 올라갈 볼 만 할 것 같았는데, 다산초당 다녀오다 불편했던 무릎 때문에 생가 주변 대나무 숲길만 걷기로 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거리는 댓잎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걸었다. 영랑은 참 평화로운 환경에서 글을 썼겠구나 싶었다. 물론 시대적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영랑 생가 앞 '시문학파' 기념관 입구.
《시문학》 창간을 주도했던 3인의 시인. 김영랑, 정지용, 박용철 선생 동상이 시문학파 기념관 입구에 있다.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
2년 전 광주 용아 생가에서 만난 박용철 시인을 강진에서 다시 만났다. 영랑 옆 <나두야 간다> 시를 쓴 용아.

강진군은 영랑 생가뿐만 아니라 주변 도로와 담장, 건물 관리도 지극 정성이었다. 그래서 선생의 생가 주변은 아늑했고, 고혹적인 매력이 느껴졌다. 길을 따라 ‘감성 강진의 하룻길’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가슴에 와 닿은 이유였다. 영랑 생가에서 산책을 마친 뒤 아침 일찍 문을 연 커피숍에 들렀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의 여유를 마시며, 강진 여행 마무리를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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