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의 인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선거가 끝난 뒤 광주에 갔었다. 민주당의 참패로 선거가 끝난 뒤, 그들 최대 지지 기반 민심이 어떤지 둘러볼 참이었다. 당시로부터 2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했을 땐, 대구를 간 적이 있다. 그때도 같은 마음으로.
민주당 광주시당을 찾아 당직자를 만나 인터뷰하고, 양동시장과 송정역 시장을 돌며 상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바닥 민심을 가장 잘 읽는다는 택시 기사도 서넛 만났다. 그는 내가 탄 마지막 택시를 몰던 운전사였다. 그는 딱히 갈 곳 없는 나를 데리고 무등산으로 갔다. 내가 그를 따라갔는지, 그가 나를 따라나섰는지 모르겠다.
무등산 자락 계곡이 흐르는 곳에서 그와 나는 점심을 먹었다. 식사비는 내가 냈다. 나는 거기서 혼자 막걸리도 먹었다. 그는 운전대를 잡는다고 마시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는 무등산 근처 작은 사찰을 들렀다. 대웅전 앞에 서니 드넓은 무등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절에서 내려와 그는 나를 태우고 반나절 동안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수중에 돈이 많이 없다고 했더니, 그는 “10만 원만 주소”라고 했다. 그는 나를 데리고 담양으로 향했다. 한국의 민간정원 중에서 최고라고 칭송받는 소쇄원을 걷고, 근처 죽림원에서 대나무 숲길을 함께 거닐었다. 광주로 다시 돌아와선 민주 열사가 잠든 5.18 민주묘지에 가 같이 참배도 했다. 개인택시도 아니고, 영업 택시를 끌고. 나와 함께 그냥, 놀았다.
저녁에는 단골집이 있다면서 목살 주물럭집으로 데려갔다. 삼겹살을 굽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휴가 나온 둘째 아들이 공군인데, 나도 공군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대뜸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주기까지 했다. 저녁은 그가 샀고, 나는 2차로 맥줏집에 가서 호프를 샀다. 그렇게 우리는 ‘형제’가 됐다.
2년 전 광주에서 기사와 승객으로 만난 두 사람. 당시 나는 그와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페북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KTX 광주송정역 근처 모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 날 돌아오는 길,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속은 좀 괜찮냐고 물었더니, 수화기 너머에서는 ‘암시랑도 안 하요’라는 대답이 들렸지만, 목소리는 숙취에 허덕이는 듯했다. 출근도 못했지 싶었다. 그는 “다음에 가족이랑 같이 오라”고 했지만, 기약은 없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강진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그와 다시 광주에서 만났다. 그는 여전히 택시를 몰고 왔고, 나와 함께 밥부터 먹자며 식당에 데려갔다. 그와 간 식당은 2년 전 저녁을 먹었던 금호식당. 식당 간판을 보니 반가움이 넘쳤다. 안에 들어가선 “2년 만에 왔시유”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금호식당 주인 부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가 내 소개를 다시 했다. 그날 점심은 내가 샀고, 그는 열차 시간을 물었다.
“3시간이 남았네잉. 어째쓰까. 그라지 말고 나랑 불갑사 꽃무릇이나 보러 갑시다.”
“불갑사는 또 어디유?”
“영광.”
“시방 영광을 가자고요?”
“얼마 안 걸려야. 아, 꽃무릇이 졌을지 모르겄다.”
“그냥 근처 커피숍에 있다가 가면 돼요. 형님 영업도 해야 하는디.”
“이 시간엔 손님도 읍써라. 저녁이나 돼야 콜 몇 개 붙응게. 그라지 말고, 드라이브나 하자고. 나도 간만에 바람도 좀 씨게.”
그렇게 또 우리는 택시를 타고 여기저기를 달렸다. 택시 안 미터기는 꺼져 있었다. 그는 영광 백수 해안도로를 달리다 갓길에 차를 멈추고 내렸다. 탁류가 흐르는 바닷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길가에 재배 중인 모싯잎을 보며 그는 말했다. “영광은 과거 법성포 굴비가 유명했는데, 요즘은 모싯잎이 더 유명해. 요즘 시상에 누가 절여 놓은 생선을 먹겄나.” 나는 그때 모싯잎을 처음 봤다. 처음에는 깻잎인 줄 알았다.
그는 갑자기 공사 중인 도로에 차를 댔다. 그러고는 작은 컨테이너박스로 다가가 모싯잎 송편을 한 박스 사 내게 쑥 내밀었다.
“가져가서 식구들이랑 맛보소.”
“아니, 뭘 이런 걸 다..”
“괜찮어.”
“제가 안 괜찮은디..”
“괜찮어.”
밖에서 공사 중인 인부들이 얼른 차를 빼라며 빽빽거리는 통에 허둥지둥 받아 들고 나왔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그와 나는 영광 백수 해안도로를 달렸다. 미터기는 꺼져 있었다. 그와 나는 이렇게 인연을 또 이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형님'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 나나 그나 모두 건강하길. 그래야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는 한 시간 여 드라이브를 마치곤 광주송정역 앞 스타벅스에 나를 내려줬다.
“반가웠네. 담에 오면 또 연락하그마. 건강 잘 챙기고. 뭐니 뭐니해도 건강이 최고여. 나가 올해 환갑인디, 아직도 아들들이랑 캐치볼 햐. 동상은 아이들도 어링게 더 정신 바짝 채리고 살어. 술도 좀 줄이고. 소설은 잘 될 거이네. 대충 얘기만 들어봐도 재밌구만. 대박날거네.”
그는 좋은 말만 잔뜩 풀어놨다.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은 이렇게 또다시 연을 이어갔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광주의 택시 운전사 김희동. 그는 이제 ‘아는 형님’에서 ‘찐 형님’이 되었다. 내내 건강하소서.
#후기: 그의 택시에서 내릴 때, 나와 그는 약속을 하나 했다. 내용은 비밀이다. 난 그 약속을 지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