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에 갔을 때, 맨 먼저 들른 곳은 대구면에 있는 고려청자 박물관이다. 평일 오전 주차장은 한산했고, 대정원의 커다란 녹나무 한 그루가 살랑바람에 흔들리며 마중 나왔다.
작은 호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소리가 아침 고요를 깨우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그만큼 정원은 조용했고, 고즈넉했다. 수령이 꽤 돼 보이는 나무들이 빼곡했고, 곳곳에 비취색 청자들이 흔하게 보였다. 박물관 입구에는 청자를 빚고 있는 도공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도공 동상 앞에는 계룡정(鷄龍亭)이라는 정자가 오도카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청자로 덮은 지붕 기와를 보고 기겁하고 놀랐다. 고려시대에는 청자가 그릇(용기)뿐만 아니라 건축자재로도 쓰였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떡 벌어진 입을 틀어막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고려청자 박물관 입구 앞에 있는 청자 빚는 도공 동상.
청자 도공 동상 앞으로는 지붕을 청자 기와로 덮은 '계룡정'이 있다.안에도 방문객은 없었다. 막 실내 청소를 시작한 아주머니들과 요금 징수원으로 보이는 남자 둘만 있었다. 내가 첫 관람객이었다. 관람료 2천 원을 낸 뒤 안내서 하나를 빼 들고 구경을 시작했다.
청자박물관은 1997년 3월 문을 열었다. 소장유물은 약 3만 점. 박물관 2층에 올라갔다. 다양한 모양의 청자가 저마다 고유의 빛과 문양으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국보인 청자 구름학 무늬 매병부터 참외 모양 병까지. 청자뿐만 아니라 고려시대 사발과 다기, 화분, 향로, 베개까지.
한쪽에는 청자의 기원부터 제작과정을 설명했고, 그 옆으로는 개경으로 청자를 실어 나르던 목선(木船)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설 전시관에는 다양한 문양의 청자들이 전시돼 있다.고려청자의 특징은 맑고 투명한 유약과 다양한 무늬를 조각한 다른 색의 흙을 메워 넣은 상감기법을 들 수 있다. 문양은 학, 용, 연꽃, 모란, 국화, 구름 등이 대표적이다. 청자의 유약은 담녹색을 띠는데, 비취(옥)와 같다고 해서 ‘비색’이라 불렸다. 당시 중국에서는 고려 비색을 ‘천하제일’로 꼽았으니, 문화적 예술성이 얼마나 뛰어났다는 말인가.
다시 밖으로 나와 옛 가마터를 둘러봤다. 한 점의 비색 청자를 구워내기 위해 불구덩이에 장작을 넣고 빼며 땀을 뻘뻘 흘렸을 그 옛날 도공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전남 강진군 대구면과 칠량면 일대는 고려 초기부터 후기까지 청자를 만들었던 수많은 가마터(도요지)가 있다.
왼쪽은 청자처럼 맑고 투명한 사람과 청자, 오른쪽은 고려청자 가마터 모습. 내가 강진 여행에서 가장 먼저 청자박물관을 찾은 이유는 내 소설이 ‘고려청자 도난 사건’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강진은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청자의 80%가 만들어진 곳이다. 그야말로 ‘청자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소설 등장인물인 마천왕이 백제 멸망 이후 남하해 가마를 지었다는 설정을 하기 안성맞춤인 장소가 바로 강진이었다. 소설에서는 강진이 아닌 ‘장천’으로 묘사했다. 또 소설에서 도난당한 청자는 연화 무늬 매병으로 설정했고, 오룡청자와 구룡청자 정병도 등장한다.
작품 속 마(馬)씨 가문이 청자를 만들기까지 지난했던 여정의 출발점이 바로 강진이었다. 고려청자 박물관을 여행의 1순위로 정한 건, 그런 연유였다. 박물관 주변에는 체험장과 디지털 박물관, 청자 판매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