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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an 07.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천방지축 나미진

다운은 이들의 악명을 미래를 통해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접한 그들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음색부터 섬뜩할 정도였다. 급기야 나애리는 교단 앞으로 나와 다운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배를 달라고 계속 시비를 걸었다. 다운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하자, 쌍욕을 하며 들어갔다. 교실 바닥에는 씹던 껌을 퉤, 뱉기도 했다. 

다운은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눌렀다. ‘지금 흥분하면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없어. 참아야 하느니라.’ 다운은 다시 칠판으로 돌아서 수업을 진행했다. 

“자, 대한민국에서 탐정은 무슨 일을 할까요? 누가 말해 볼 수 있는 사람?”

“사람 뒷조사요!”

“범죄 해결.”

“떼인 돈 받아주기!”

여기저기서 다양한 대답을 내놨다. 다운은 학생들이 답할 때마다 일일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대강 그런 일을 하고 있어요. 아까 얘기했던 명탐정 코난이나 셜록 홈즈처럼 누군가로부터 사고나 사건을 의뢰받아 추리하고 조사해서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탐정이에요. 탐정업은 흥신소라는 간판을 걸고 하고 있는데, 흥신소라는 어감이 그리 밝은 이미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다운은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저 같은 경우는 아까도 말했듯이 일반적인 탐정 일을 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거나 꿈을 잃지 않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다운의 말에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일은 정신과 의사나 심리 상담사들이 하는 거 아닌가요? 탐정이 그런 일을 해서 어떻게 돈을 벌어요?”

반장인 여학생이 진지하게 물었다. 

“물론, 의사나 상담사처럼 전문가들 영역이긴 하죠. 하지만 그들만의 영역이라고 볼 수도 없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사고나 사건을 당해 꿈을 잃었거나 꿈을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있거든요. 그래서 돈을 많이 벌진 못해요. 하지만 희망 넘치고 정다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한다는 긍지와 보람이 돈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운은 제법 멋지게 말을 늘어놓았다.

그때 천태산이 다시 빈정거리며 도발해왔다. 

“오호, 긍지와 보람? 야, 너희들 들었냐? 돈도 못 벌면서 긍지와 보람이래? 와, 여기 대단한 자선사업가 오셨다. 안 그래? 크하하하.”

태산의 우렁찬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미진 트리오’는 주먹으로 책상까지 두드리며 소란을 피웠다. 다운은 어이가 없었다. 그리곤 더는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10분만 쉬었다 하자.”

다운은 학생들에게 제자리에 앉아서 쉬라고 했다. 그러나 고분고분 말을 들을 아이들이 아니었다. ‘천방지축 나미진’을 필두로 여럿의 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시끄럽게 떠들며 교실 곳곳을 활보하고 다녔다. 알아듣지 못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다운은 손을 이마에 짚으며 교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태산과 미진은 다운이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 서로 마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화장실에서 찬물에 세수하고 나온 다운은 복도를 지나 교실 입구에서 멈췄다.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중대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힘차게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묵직하고 단단한 물체가 다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라 다운은 미처 피할 수 없었다. 물체는 다운의 얼굴을 강타했다. 

‘퍽!’

“으악.”

다운은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곤 얼굴을 감싸 쥔 채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번개가 번쩍하며 어지러웠다. 눈물이 핑 돌았다. 몇몇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물가물 들렸다. 그 사이로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현재의 얼굴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현재의 희미한 실루엣을 본 다운은 겨우 정신 줄을 붙잡았다. 다운의 손에 뜨거운 액체가 만져졌다. 코피였다. 

다운을 향해 날아든 건 축구공이었고, 공을 정면으로 맞은 다운의 코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맨 앞줄에 앉은 아이가 재빨리 두루마리 휴지를 가져다 다운의 손에 쥐어 줬다. 휴지를 받아든 다운은 ‘괜찮다’라고 손짓하며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다운은 연신 코를 훔쳤다. 어느 정도 지혈이 됐다 싶었을 즈음, 휴지를 돌돌 말아 코를 틀어막고 교단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누구지? 세상에서 제일 비싼 내 코를 이 모양으로 만든 녀석이?”

다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푹 숙였다. 자기가 했다고 자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애리가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탐정이라면서요? 직접 찾아보세요, 범인이 누군지.”

애리의 말에 다운은 짧고 강한 어조로 외쳤다. 

“천방지축 나미진! 너희들 짓이잖아!”

다운 입에서 ‘천방지축 나미진’이란 말이 나오자 가장 충격을 받은 이들은 당사자 일곱명이었다. 그들은 다운이 어떻게 그 별명을 아는지 의아했다. 그건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저 아저씨. 다 알고 온 거 아냐?”

누군가 수군거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쟤네 별명을 어떻게 알겠어?”

“맞아, 맞아, 그런가 봐. 정말 탐정이 맞나봐.”

수군거림이 확산하자 태산이 책상을 쾅 치며 벌떡 일어났다. 

“탐정 아재님. 우리가 범인이라는 증거 있어요? 무슨 증거로 우리를 콕 찍어 죄인으로 모는 거예요? 아까 살짝 장난 좀 치고, 농담 좀 했다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면 곤란하죠?”

다운은 태산의 산만 한 몸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다운의 서늘한 웃음에 태산은 짐짓 놀랐다. 다운의 돌변한 모습을 본 나머지 무리도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증거? 증거라고 했겠다? 오냐, 너희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증거를 내가 직접 보여주지!”

다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자 칠판에서 영상 파일이 재생됐다. 화면에는 태산이 축구공을 들고 악동 무리 속에 숨어있었다. 그러다 화장실을 다녀온 다운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다운의 얼굴을 향해 공을 집어 던지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혔다. 그건 다운이 노트북에 영상 녹화 기능을 작동하도록 미리 설정했기 때문이다. 다운이 교실에 처음 들어온 순간부터 축구공이 날아든 순간까지 모든 상황이 담겨 있었다. 마치 CCTV 화면처럼. 화면을 보는 일곱 명은 아연실색했다. 

“너희들 보디캠이라고 들어봤니?”

다운은 와이셔츠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이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잘 봐. 이건 휴대용 CCTV나 블랙박스 같은 역할을 하는 보디캠이라는 거란다. 영상뿐만 아니라 음성까지 담겨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록이 돼. 그래서 탐정에게는 필수 아이템이지. 자, 이 작은 기기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똑똑히 보라고!”

교실은 순식간에 숨이 멎은 듯 고요해졌다. 

“천방지축, 그리고 나미진. 이제 너희들이 변명할 순서야. 아니지, 무슨 변명을 하겠어, 여기 완전한 ‘빼박’ 증거가 있는데. 너희들은 이제 벌 받는 일만 남았지. 참고로, 나는 교사가 아닌, 민간인이라 형사 처벌도 요구할 수 있어. 이 정도 코피면 전치 2주 진단은 쉽게 나올 거고. 그리고, 나애리. 넌 아까 나한테 담배 달라면서 툭툭 치고 협박까지 했으니까 별도로 고소하겠어.”

다운의 으름장에 ‘천방지축 나미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난 착하고 순한 선생님이 아니라서 여러분을 너그럽게 용서해 줄 만한 아량이 없어. 잠깐 와서 강사료나 받아 가면 다시 볼 일 없는 아저씨니까.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다. 그리고 너희들은 조만간 경찰서에서 보자고.”

판세는 순식간에 역전됐다. 교실 안 공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다운은 노트북에 꽂힌 USB를 빼 옷 안주머니에 넣고 교실을 나왔다. 그리곤 교무실을 찾아가 담임교사와 교장 선생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학교폭력위원회 소집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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