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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Jan 14.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천방지축 나미진

교무실은 발칵 뒤집혔다. 교장은 다운이 건넨 영상 파일을 확인한 뒤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다운이 요구한 학폭위 소집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저, 선생님. 그냥 조용히 처리하면 안 될까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학교 이미지도 있는데….”

“뭐라고요? 아니, 교장 선생님. 이렇게 엄연히 증거가 있는데, 학교 이미지가 중요한가요?”

교장의 말에 다운은 어이가 없었다.

“어떤 심정이고, 무슨 말씀인지는 충분히 압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도 걸린 문제이니 내부적으로 조용히 처리하고 싶습니다. 학부모들께도 잘 말씀드려서 치료비는 섭섭지 않게 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갈수록 가관이군요. 교장 선생님, 이 일은 단순히 합의로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당한 수모와 신체적 피해뿐만 아니라 수년째 학폭에 시달린 학생이 있습니다. 엄연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 학교폭력이라고요.”

“수년째 학폭이라뇨?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교장은 얼굴이 새파래졌다. 교장 옆에 앉아 있던 담임교사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다운은 미래로부터 들은 현재의 피해 사실을 하나하나 풀어놨다. 설명을 듣고 난 교장은 고통스럽다는 듯 자신의 머리통을 쥐어 잡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 녀석들 성격이 좀 드세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미처 몰랐습니다. 김 선생, 자네는 담임인데 모르고 있었나?”

교장의 채근에 담임교사는 어쩔 줄 모른 채 우물쭈물했다.

다운은 그러니까 학폭위를 열어 가해 학생들을 처벌해야 한다, 고 재차 요구했다. 그래도 교장은 찜찜한 구석이 있는지 즉답은 하지 못했다. 

“일단, 이사장님께 보고를 드려보겠습니다. 제가 아무리 교장이라고 해도, 사립학교다 보니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서요.”

교장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재단 이사장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이사장님, 교장입니다. 학교에 문제가 생겼는데요. 잠깐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태산이도 걸려 있는 거라서.”

교장 입에서 ‘태산’의 이름이 나온 건 의외였다. 교장이 그렇게 말했다면 태산과 이사장 사이가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의미였기에. 이사장은 20분 만에 학교에 도착했다. 검은 외제 차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들어섰다. 운전기사가 재빨리 뒷문을 열었고, 우람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정 구두에서, 까만 선글라스에서, 벗겨진 이마에서 번쩍번쩍 광이 났다. 그는 재단 이사장 ‘천수만’이었다. 그는 조수석에서 내린 수행비서를 앞세워 교무실로 향했다. 

“이 사고뭉치가 또 일을 벌인 모양이군.” 

수만은 태산의 아버지였다. 수만은 집이 가난해 중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몸 쓰는 일을 해 돈을 벌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시장에서 옷을 팔아 이문을 남겼고, 20대 초반 자기 명의로 된 의류회사를 차렸다. 

이후에도 그는 사업에 일가견이 있어 하는 일마다 성공했다. 지금은 연 매출 수십억 원을 올리는 물류회사를 운영 중이다.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명성과 입지를 다졌지만, 배움의 한은 두고두고 남았다. 그 한을 풀기 위해 교육사업을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행복중학교였다. 하지만 사고뭉치 아들 덕에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의 이마 주름이 오늘따라 유난히 깊어 보였다. 

수만이 교무실에 들어서자 교장과 담임 교사가 급히 일어나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다운도 엉거주춤 일어나 수만을 맞았다. 교장은 수만과 다운에게 서로를 소개했다. 

“소장님, 저희 학교 재단 이사장님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오늘 진로 직업 특강을 온 정다운 소장님입니다.”

“천수만이요.”

“정다운입니다.”

명함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고, 교장이 자세한 내막을 설명했다. 설명을 듣고 난 수만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그리곤 다운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제 아들이 정 소장님께 큰 결례를 저질렀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애비인 제가 먼저 사과드립니다. 그동안 사업한다고 정신이 없어 하나뿐인 아들 녀석 관리에 소홀했습니다.” 

다운은 수만의 사과가 당황스러웠다. 왠지 거만하게 굴면서 ‘얼마면 되느냐’고 삐딱하게 굴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운은 이내 표정을 바꿔 수만에게 건의했다. 

“태산이 아버님. 이건 학부모가 자녀 대신 사과할 사안이 아닙니다. 제가 겪은 봉변은 둘째치고, 한 교실에 학폭 가해자와 피해자를 계속 생활하도록 할 순 없습니다. 이건 한 아이의 미래가 달린 일이기도 하고요. 학교 이사장님으로서 나서서 해결할 문제입니다.”

다운의 말을 들은 수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뭔가 곰곰이 생각한 다음 수행비서를 불렀다. 비서는 달려오듯 수만에게 다가왔고, 수만은 비서의 귀에 대고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수만의 지시가 끝나자 비서는 들고 있던 결재판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결재판 안에 있던 흰 종이에 뭔가 적고는 교무실 밖 복도로 나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정 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리 뉴스에서 학폭이 문제라고 떠들어도 우리 학교만큼은 그런 일이 없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제 아들 녀석이 학폭 가해자였다니…. 소장님 말씀대로 이건 그냥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무슨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요?”

수만은 다운을 쳐다보며 부탁했다. 다운은 수만의 진지하고 적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시나리오를 수만과 교장, 담임 교사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다운의 시나리오에 모두가 공감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로 향했다. 수만이 맨 앞장섰다.      


*     


교실 문이 열리고 수만과 교장이 들어섰다. 그 뒤를 다운과 담임 교사가 따라 들어왔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태산은 눈이 동그래졌다. 태산뿐만 아니라 ‘천방지축 나미진’ 클럽은 안절부절못했다. 

교장이 수만을 소개했고, 수만은 근엄한 자세로 교단에 섰다. 

“저는 이 학교 이사장인 천태산이라고 합니다. 아는 친구도 있겠지만, 저기 맨 뒤에 앉은 천태산이 제 아들이고요.”

아이들은 수만이 무슨 얘기를 할까 숨을 죽인 채 수만의 얼굴만 쳐다봤다. 

“오늘 이 교실에서 아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특강을 하러 온 강사분께 무례함을 넘어서 신체적인 피해까지 입힌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제 아들이 주도적으로 동참했다는 사실까지도.”

수만의 말을 듣고 있던 태산은 눈을 찔끈 감은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게 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시킨 제 잘못입니다. 선생님들과 소장님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말을 마친 수만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차가운 바닥에 육중한 두 다리를 접고 고개를 숙였다. 수만의 행동에 학생들은 아, 소리를 내며 놀라운 반응을 나타냈다. 

“소장님, 아이들이 소장님께 저지른 잘못은 경찰에 신고해서 마땅한 처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교내에서도 학폭위원회를 열어 징계를 요구하겠습니다. 부디 학생들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급기야 수만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모습을 본 태산과 애리가 황급히 뛰어나와 수만 옆에 무릎을 꿇었다. 

“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장난으로 그런 거예요. 한 번만 봐주세요, 네?”

“뭐? 장난? 용서? 그렇게 못하겠다면?”

다운이 단호한 표정을 짓자 태산과 애리는 나머지 아이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나머지 멤버들까지 우르르 나와 무릎을 꿇었다. 

“쌤, 제발 부탁드립니다. 수업 잘 들을 테니까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꿈을 잃어버리지 않게 도와준다면서요? 저희를 경찰에 신고하면 퇴학당할 수도 있고…그러면 꿈을 이룰 수 없을지 모르잖아요. 그러니 제발…부탁드려요.” 

애리가 눈물을 질질 짜며 말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흐느끼며 울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다운은 자신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래? 진심으로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거야?”

“네!”

일동은 모두 한목소리로 답했다. 

“그만 일어나 너희들 자리로 돌아가. 이사장님도 그만 일어나시고요.”

다운은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무릎을 꿇고 선처를 바라던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나 자리로 돌아갔다. 수만과 교장은 맨 앞줄에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고, 담임도 교사 자리에 앉아 다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천태산!”

“네.” 

“너는 꿈이 뭐니?”

“제 꿈은…이강인이나 손흥민 같은 국대 축구선수가 되는 거요.”

“멋진 꿈이네. 그런데 축구는 운동장에서 하는 거지, 교실에서 하는 건 아니잖아. 발로 차는 것도 아니고, 그 무시무시한 손으로 던지는 건 핸드볼이나 피구선수들이 하는 거고.”

다운의 넉살에 아이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태산은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애리야.”

“네, 쌤.”

“너는 무슨 꿈이 있니?”

“저는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에요. 엄마가 의상실을 하고 계시는데, 어릴 때부터 엄마가 만드는 옷이 정말 예뻐 보였거든요. 지금도 그렇고…”

“그래, 태산이나 애리처럼 누구에게나 꿈이 있어.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지.”

다운의 진지한 설명에 교실의 분위기는 차분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다운에게로 쏠렸다. 양쪽 코에 휴지를 틀어막은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웠지만, 다운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소중한 꿈을 꾸고 그걸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때가 지금의 학창 시절이야.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한다면 그 친구는 어떻게 될까? 더 이상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도 없어질뿐더러, 자기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마주치는 게 죽기보다 싫겠지? 결국 꿈을 이룰 수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마음이 생길 수도 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뉴스에서 종종 보잖니.”

다운의 말에 현재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마치 자기 얘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언니 미래가 실제로 다운에게 이 일을 의뢰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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