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불신, 그 덧없음에 대하여

마음이 불편하다면, 먼저 손 내밀어보세요

by 류재민

누구나 살다 보면 오해를 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과는 오해가 생기기 어렵습니다. 부부나 형제, 동료같이 가까운 사이에서 생깁니다. 기본적으로 신뢰를 기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오해가 생기면 신뢰라는 관계가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오해가 불신을 부르는 건지, 불신이 오해를 부르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오해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별것도 아닌 건데, 당시에는 서운함이 생기고, 갈등으로 번집니다. 심한 경우 마치 죽을죄를 지은 원수처럼 서로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험담은 기본이고, 드잡이 하는 추태도 벌어집니다.


주변 사람들도 피곤해집니다. 부부간에 오해가 생기면 자녀들이 겁을 먹습니다. 형제간에 오해가 생기면 부모나 다른 형제들까지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동료 사이에 오해가 생기면 함께 어울렸던 동료들까지 서먹해집니다.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라집니다.


이럴 때 주변 사람들은 방관만 할 게 아닙니다. 다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마지못해서라도 당사자들이 대화의 테이블에 앉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어야 주변 사람들도 편해지니까요.


정치도 그렇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태생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정당의 존재 목적이 정권 획득에 있다 보니 어떻게든 상대를 이길 생각만 하니까요. 아무리 좋은 법이라도 상대가 하는 건 반대하고, 아무리 좋은 정책 제안도 귀담아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로지 자기 말만 옳다고 밀어붙입니다. 기본적인 신뢰가 없으니 툭하면 싸웁니다. 멱살 잡고, 악다구니 쓰고, 욕도 합니다.


사이를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다 보니 국민들이 정치를 불신하는 겁니다. 여야의 대립은 이념 대결을 부채질합니다. 가르마를 타야 할 국민들마저 편을 나눕니다. 자기와 같은 가치관과 이념을 가졌으면 내 편이고, 반대편에 서 있으면 적(敵)으로 치부합니다.


국민을 통합이 아닌, 분열로 이끄는 정치는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퇴행의 정치, 극단의 정치를 반복하는 나라는 국민들이 살기 어렵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늘 배고프고, 내일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뀌거나 국회가 바뀔 때마다 정치는 국민들에게 ‘협치’를 약속합니다. 협치의 바탕은 양보와 배려에 있습니다. 양보와 배려가 있어야 타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어른인데 왜?” “나이만 많으면 다야?” “우리 의석수가 더 많은데 왜?” “쪽수 적다고 깔보냐” 이러면 대화가 안됩니다. 평행선만 달릴 뿐입니다. 평생 안 보고 살면 그만이라고요? 사는 동안 내내 번민하고, 고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우리 모두 ‘사람’이니까요.

지금 만약 누군가를 오해하고 있다면, 그래서 마음이 불편하다면, 먼저 손 내밀어보세요. 그깟 자존심은 옆집 사는 빙고나 뽀삐 갖다 주세요. 진짜예요. 제가 해보니 좋아서 하는 얘깁니다.


오늘 들려드릴 노래는 이은미의 <녹턴>입니다. 오늘도 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oxG48PSAS7o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덟 살 아들과 통신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