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를 거닐다

마음의 안식이 필요한 때

by 류재민

산사(山寺)에 다녀왔습니다. 천안 태조산 자락에 ‘각원사’라는 유명한 절이 있는데요. 마음이 심란해 정리할 것이 있을 때 가끔 찾습니다. 바람은 찼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처럼 잔뜩 흐렸습니다.


대웅전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추녀에 달아 놓은 풍경이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렸고, 그 소리는 빠르고 넓게 퍼졌습니다. 법당 안에선 스님 염불과 목탁 소리가 흘러나왔는데요. 계단을 올라가며 들으니 누군가의 천도재를 지내나 봅니다.


천도재는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인데요. 가장 잘 알려진 것이 49재입니다. 2년 전 제 아버지 49재도 여기서 지냈습니다. 안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방해가 될 것 같아 발길을 돌렸습니다.


노스님 목탁 소리 절간 밖까지 진동하고
요령 흔드는 소리, 제문 읊는 소리가
안에서 밖으로 울려 나가고
밖에서 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풍경 소리는 법당 안 고요를 깨운다.
어머니와 두 동생, 매제들 한 줄로 죽 앉아
고인의 극락왕생을 빈다.
칭얼거리던 어린 아들은 어미 품에서 잠든
내 아버지의 예순세 번째 생신
갈비며, 잡채며, 과일에 케이크 올려놓고
오순도순 모여 앉아 촛불 밝히다
올해는 향불에 잿밥으로 올린다.
떡이며, 밥이며, 국이며 나물, 과일 한 상
정성껏 차려놓고
영정 앞에 술 한 잔 올린다, 눈물 한잔 올린다.
<아버지 생신, 류재민>

절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이 절의 상징인 청동 불상을 만났습니다. 높이가 15미터, 무게는 60톤이라고 하는데요. 제가 어릴 적만 해도 동양에서 가장 큰 불상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어머니 뱃속에서 콩알만 했던 1977년 5월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청동불상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입니다.

어머니께서 불자여서 저는 자주 이곳에 왔습니다. 그래서 불상을 보노라면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함이 느껴집니다.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불상 앞에 한 아주머니께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는데요. 수험생 자녀를 둔 어머니의 기도인지,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도인지 모르겠으나, 그 모습은 엄숙하고 숙연했습니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제 마음이 혼란스러워서인지, 불상을 감싸고도는 산은 잔뜩 외로워 보였습니다. 땅에 떨어진 낙엽도 생을 다했다는 생각을 하니 참 쓸쓸했습니다.


불상을 바라보며 두 손 모아 합장하니 하늘처럼 흐렸던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큰 숨 한번 들이마시자 찬 공기가 몸 안으로 들어와 퍼졌습니다. 약수 한잔 마시니 맑은 기운이 또 한 번 몸을 감돌았습니다. 마치 어두웠던 방안에 한 줄기 빛이 쏟아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우리는 자기 몫의 삶을 살고 있는지
저마다 오던 길을 한번쯤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그는 새로운 삶을
포기한 인생의 중고품이나 다름이 없다.
그의 혼은 이미 빛을 잃고 무디어진 것이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끝없는 탐구이고 시도이고 실험이다.
탐구와 시도와 실험이 따르지 않는 삶은
이미 끝나버린 삶이나 다름이 없다.
<법정스님 인생응원가, 정찬주>

겨울 문턱 산사의 모습입니다.
약수 한잔 마시니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와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인생도 희로애락의 굴곡이 있다고 하잖아요.


100년도 못 사는 삶인데, 우리는 왜 그리 아등바등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남을 시기 질투하고, 그래서 걱정 근심을 달고 사는 걸까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데 말입니다. 알고 보면 산이 외롭게 보인 건 제 마음이 외롭기 때문일 겁니다. 또 낙엽이 떨어져야 이듬해 또 다른 잎과 꽃이 핀다는 건 자연의 섭리이자 이치입니다.

산처럼, 부처님처럼 넓은 마음을 품고 살아야겠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세상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야겠습니다. 그러다 또 마음의 안식이 필요하면 다시 이곳을 찾아 위안과 휴식을 얻으면 되겠지요. 산과 부처님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오늘 띄워드릴 곡은 윤종신의 <오르막길>입니다.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VvLNz352f7Q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해와 불신, 그 덧없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