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들과 통신을 시작했다

‘인생의 짐’이 아니라 ‘인생의 힘’

by 류재민
잠시 외출을 다녀온 사이 문 앞에 택배가 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의 휴대폰입니다. 드디어 녀석이 ‘통신’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입니다.
값비싼 스마트폰은 아니고요. 두 살 터울 누나와 같은 ‘알뜰한 폰’입니다. 전화와 문자메시지 같은 기본적인 기능만 갖추도록 했습니다.


아들과 처음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입니다.

10대의 길로 들어선 누나는 슬슬 스마트폰으로 ‘점프’를 꿈꾸고 있는데요. 아들은 오늘 손에 넣은 전화기가 마냥 신기한가 봅니다. 종일 손에서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러니 스마트폰을 사주면 어떨까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최대한 그 시간을 늦추려고 생각해낸 것이 우체국 알뜰폰입니다.


전화기를 받자마자 맨 먼저 엄마, 아빠, 누나 번호를 입력했습니다. 번호를 입력해준 다음 전화를 걸고 받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이제 제가 아들 번호를 저장할 시간인데요.


그냥 ‘아들’이라고 하기엔 재미가 없잖아요. 재미 삼아 ‘인생의 짐’이라고 저장했습니다. 그걸 본 녀석이 복수에 나섰습니다. 녀석은 저를 ‘아빠’가 아니라 ‘나 잡아봐라’라고 입력했습니다. 요즘 저만 보면 자꾸만 자기를 잡아보라면서 달아납니다. 잡으려고 뛰어가면 어느새 저만치 내달려서 ‘메롱 메롱’하며 약을 올립니다.

'인생의 짐'이 아니라 '인생의 힘'입니다.

여덟 살짜리 잡는 일이 뭐 어렵겠습니까. 그래도 단번에 잡으면 놀이가 안 됩니다. 잡을락 말락, 아슬아슬, 암탉을 잡으려는 닭장 밖 배고픈 여우처럼 표정을 짓고 행동해야 합니다. 숨이 차서 도저히 못 잡겠다고 ‘지지(GG: Good Game)’를 외쳐야 순조롭게 게임이 끝납니다.


녀석이 언제까지 저더러 술래잡기하자고 하겠습니까. 몇 년만 지나면 휴대폰 게임에 팔려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텐데요. 그래서 잡아보라고 할 때마다 부지런히 잡으러 가는 ‘척’ 합니다. 아들과 ‘친구’가 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딸과는 달리 동성으로의 연대감 같은 것이 있거든요.


아이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어디 놀러 가자고 할까봐 겁이 났다고 합니다. 노는 것이 아니라 중노동을 하는 기분이었겠지요. 아이가 어려서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꼼짝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지만, 중학생이 되어 힘이 세졌다고 생각하자 아버지에게 억울한 기분을 토로하고 대들기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힘과 권위로 자신을 윽박지르며 밀어붙인 아버지와 일찌감치 정서적 연대를 포기했던 겁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노경선>


지금 제 휴대폰에는 아들이 ‘인생의 짐’이 아니라 ‘인생의 힘’으로 저장돼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무슨 정당 이름 같기도 하네요. 하하하. 여러분의 ‘인생의 힘’은 누구인가요? 세상에 가족만큼 강력한 힘은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힘든 인생 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또 만나요.


오늘 고른 노래는 김종서가 부른 <아버지>입니다. 오늘따라 가사가 와 닿네요. 인생의 힘과 함께 듣습니다.

*영상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cw6f2xxFSmo&list=RD6hyqrAlpJw8&inde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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