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재민 Jan 28.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삼천리 연탄구이

세 사람은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그동안 사무실 임대료 걱정에 회식 한 번 맘 편히 못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다운은 쾌한과 달래에게 더 미안했다.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야 하는데, 제 능력이 부족해 두 분께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희는 아무 상관 없어요. 오히려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있어서 더 좋아요.”

“그럼요. 저도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서 아이들이랑 놀아주니까 애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직원들은 다운을 격려했다. 다운은 두 사람이 하는 말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두 분 때문에 저는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자, 우리 건배합시다. 정다운 흥신소의 무궁한 발전과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소중한 꿈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술자리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달래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핸드폰을 챙겨 들고 문밖에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아직까진 정신이 말짱했다. 막 화장실 입구에 다다랐을 때, 그녀 앞에 웬 남성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연탄불을 넣고, 고기를 가져다주고, 불판을 갈던 식당 사장이었다. 남성은 달래를 보더니 전화기를 든 채 자리를 옮겼다. 달래는 살짝 고개 숙여 목례하고 급히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용변을 마친 달래는 화장실 거울을 보고 화장을 고쳤다. 화장실 건물 뒤쪽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식당 주인인 듯싶었다. 달래가 화장을 고치는 내내 통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달래야, 아빠 일 끝나자마자 들어갈게. 조금만 기다려.”

‘달래? 나랑 딸 이름이 나랑 똑같네’ 

달래는 립스틱을 바르며 헤벌쭉 웃었다. 

“숙제는 다 했니? 내일 학교 가져갈 준비물은 다 챙겼고?”

그건 다정한 아빠의 목소리였다. 

‘엄마는 집에 없나? 왜 아빠가 그런 걸 다 챙기지?’

화장을 다 고친 달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장실을 나왔다. 그러다 통화를 마치고 식당 안으로 향하던 남자와 다시 마주쳤다. 두 사람은 하마터면 부딪칠 뻔했다. 

“아, 손님. 미안합니다.”

“아녜요. 제가 문을 조심히 열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서로 사과를 마친 두 사람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남자는 식당 안으로, 달래는 비닐 천막이 있는 테이블로. 달래는 남자가 낯익어 보였지만, 정확히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달래는 취기가 올랐는지 고개를 흔들며 두 손으로 뺨을 톡톡 쳤다. 자리로 돌아온 달래는 다시 술자리에 합세했다. 어느새 테이블 위에는 소주병과 맥주병이 열을 맞춰 늘어섰다. 시간은 밤 10시를 넘어섰다.

“소장님, 술병이 이렇게 많은데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아니면 간만에 회식이라서 그런가, 하나도 안 취하는 거 같애요.”

쾌한이 다운의 손을 덥석 잡으며 웃었다. 그의 벌건 얼굴에 혀가 살짝 꼬부라졌다.

“안 취하긴요. 혀가 오징어구이처럼 돌돌 말려 들어가기 직전이고만.”

달래가 쾌한을 살짝 째려보며 말했다. 다운은 시간이 늦었음을 알고 술자리를 정리하려고 했다. 

“자자,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여기까지 하고 정리할까요?”

“아니, 소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10시밖에 안 됐는데. 2차까지 가셔야죠.”

“아유 참, 우리 사무장님 오늘 정말 제대로 달리시네. 그러다 낼 아침 이불속에서 못 나와요. 소장님 말씀대로 오늘은 여기서 끝내고고 다음에 또 하시죠. 전 그게 나을 것 같아요.”

달래가 취기 어린 쾌한을 달랬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안 돼 안돼! 가려면 다들 가세요. 난 더 한잔 더하고 갈 테니까. 그리고 내일 정시 출근할 테니 걱정일랑 고이 접어 두시고요.”

다운과 달래는 쾌한만 혼자 두고 갈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운은 쾌한과 협상을 했다. 

“좋습니다, 사무장님. 그럼 우리 딱 소주 한 병만 더 먹고 일어나는 겁니다. 오케이?”

“안 오케이. 소주 한 병에 추가로 계란말이. 오케이?”

“콜!”

달래가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에 달린 벨을 눌렀다. 식당 종업원이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달래는 종업원에게 술 한 병과 계란말이를 시켰다. 

“저, 죄송한데요. 저희 마감 시간이 다 돼서요.”

그러고 보니 식당 안에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비닐 천막 테이블에도 다운 일행 외에 아무도 없었다. 

“앗, 죄송합니다. 금방 일어날게요.”

다운이 쾌한에게 그만 가자는 눈빛을 보냈고, 쾌한 역시 할 수 없다는 듯 체념한 순간, 안에 있던 사장이 나오면서 말했다. 

“조금 더 있다가 가셔도 됩니다. 어차피 더 올 손님도 없을 것 같군요. 계란말이는 금방 되니까 기다리세요. 대신, 11시 전으로는 일어나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아이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사장님, 복 받으실 거예요.”

쾌한이 일어나 해맑게 웃으며 사장에게 폴더인사를 건넸다. 쾌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사장도 엉겁결에 허리를 숙여 맞절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어쨌든 배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얼른 먹고 일어날게요.” 

사장은 주방으로 들어가 프라이팬에 불을 달구고 달걀을 몇 개 깨뜨려 그릇에 담았다. 그사이 종업원은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다 테이블에 가져다줬다. 다운 일행은 술자리를 마저 이어갔다. 술자리는 정확히 10시 40분에 파했다. 계산을 마친 일행은 귀가를 준비했다. 다운은 카카오 택시를 불렀고, 쾌한은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달래는 함께 사는 동생이 태우러 온다고 해서 식당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럼 달래 씨 조심히 들어가요. 내일 봐요.”

쾌한은 먼저 주차장으로 이동했고, 다운도 달래에게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도착한 택시에 올라탔다. 

“소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요, 달래 씨. 메리 크리스마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리고 몇 분 뒤면 크리스마스였다. 

“네, 소장님. 메리 크리스마스!”

다운을 태운 택시는 정차 중 비상 깜박이를 끄고, 교차로 쪽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혼자 남은 달래는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 검색을 하며 동생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달래는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옷을 구경했다. ‘크리스마스에 잘 어울리는 옷은 뭘까’ 하면서. 그때 사장과 종업원이 식당 정리를 마치고 나왔다. 

“아직, 안 가셨군요?”

사장이 문 앞에 서 있던 달래에게 말을 걸었다.

“네, 같이 사는 동생이 데리러 온다고 해서요. 괜히 저희 때문에 퇴근이 늦어서 어떡하죠.”

“더러 있는 일이라 괜찮습니다.” 

사장 얼굴을 정면에서 본 달래가 이제야 누군지 떠올랐다는 듯 사장을 빤히 보며 물었다.

“저기, 혹시…상철 선배?”

“누..구신지?”

“저 모르시겠어요? 달래예요, 진달래.”

“진달래? 혹시, 한국대 국문과 11학번 진달래?”

“네 맞아요, 선배. 아는 분이긴 한데, 누군지 영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렇게 보니 알아보겠네요.”

달래는 어려운 문제의 정답을 맞힌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했다. 

“잘 지냈어?”

사장도 반가움에 달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보시다시피. 선배, 그런데 언제부터 여기서 일한 거예요? 사무실 근처인데 여긴 그동안 한 번도 안 와 봤는데.”

사장은 두 사람의 해후를 옆에서 멍하니 바라보던 종업원에게 먼저 들어가라며 손짓했다. 종업원은 그제야 두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오픈한 지는 1년 정도 됐는데, 문을 열다 말다 해서….” 

상철은 말을 얼버무렸다.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달래는 캐묻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 누구나 말하기 어려운 비밀을 하나씩 간직하고 사니까,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마침 달래와 함께 사는 나리가 도착했다. 나리는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그녀는 유리창을 반쯤 내리고 경적을 짧게 울렸다. 

“참, 엿들은 건 아닌데 아까 우연히 전화 통화하는 걸 들었어요. 딸 이름이 달래인가 봐요?”

“응? 아, 그랬니. 그래, 맞아.”

“화장실에서 누가 내 이름 부르는 줄 알고 깜짝 놀랐지 뭐예요. 어쩜 이름도 그렇게 예쁘게 지었대요? 딸내미 기다리는 것 같은데 선배도 얼른 들어가세요. 괜히 저희 때문에 마감 늦어서 죄송하고요.”

“아냐, 정말 괜찮아. 이렇게 널 만나서 기분 좋은데.”

“언니, 거기서 뭐 해? 얼른 타, 추워.”

달래는 상철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나리가 춥다며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오래 서 있지 못했다. 

“선배, 제가 조만간 연락드릴게요.”

“그래, 동생 기다린다. 어서 가봐.”

달래는 나리가 세워둔 차 쪽으로 걸어갔다. 상철은 달래가 가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달래가 상철 쪽으로 홱 돌아섰다. 

“선배! 메리크리스마스.”

“어? 그래, 너도 메리크리스마스.”

상철은 손을 반쯤만 올린 채 머쓱하게 달래를 봤다. 차는 달래가 조수석에 타자마자 서서히 움직였다. 그리고 쾌한과 다운을 태운 차량이 갔던 방향으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상철은 제자리에서 달래가 탄 차가 골목을 지나 교차로까지 나갈 때까지 지켜봤다. 그는 작게 혼잣말했다. “반갑다, 진달래.”               

매거진의 이전글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정다운 흥신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