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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Mar 30. 2024

실력있는 편집자, 실력있는 작가

우리는 음치가 아니다

‘너목보(너의목소리가보여)’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지금도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보면 심심치 않게 걸리곤 한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과 음치를 섞어놓고 누가 실력자인지 맞히는 ‘모 아니면 도’ 게임이다. 재미와 흥미를 더하기 위해 출연자들은 서로가 실력자인 양 연기한다. 연예인 패널들은 실력자라고 믿었던 출연진이 음치라는 걸 깨닫는 순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허탈한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어떤 이는 손으로 바닥을 치거나, 바닥에 쓰러질 듯 아쉬움을 토로한다. 패널들을 속인 음치는 ‘속았지?’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른다. 노래라기 보다 꽥꽥 소리를 지른다.      


실력자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실력자다운 실력자를 소개하려는 이유다.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지난 2월 중순이었다. 그는 브런치에 공모전을 열겠다고 했다. 참여 작가 전원에게 전자책을 내주겠다는 ‘야릇한 제안’을 하며 꼬였고, 나는 덥석 미끼를 물었다. 그가 실력자였는지, 음치였는지는 ‘진짜 책’을 내고 나면 알겠지만.    

  

지금까지 난 그가 음치가 아닌 실력자라고 믿고 있다. 나중에 음치로 밝혀지면 땅을 치거나 땅바닥을 뒹굴지도 모르지만, 공모전이 반환점을 돌아 막바지로 향해가는 현재 위치에서는 그를 철석같이 믿, 고, 있, 다.   

   

그는 신묘한 재주가 있다. 그 재주라 함은 책과 출간에 ‘진심’을 넘어 ‘찐’이라는 거다. 그 진정성을 무기로 작가들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꼼짝하지 못하게 만든다. ‘조율’을 가장한 ‘조련’처럼 비칠 때도 있지만, 그 역시 긍정의 피드백이요,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주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난 그가 ‘실력자’이기를 바란다.           


그는 내가 낸 소설이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음에도 걱정하고 있다. 어쩌면 출판사 사장님보다 더. 유명 서점에 가 팔리지 않는 책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작가의 심정을 그대는 아는가. 하지만 그는 그런 내 슬프고 고단한 감정을 40이란 1만부 예약 글로 어루만지며 위로와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나중에 나는 그때의 암담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이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 가야죠. 상점 측에선 최선을 다한 겁니다. 광고도 하고, 진열창에 선전 문구도 붙이고, 한쪽 코너를 잘 정리해서 테이블도 갖다 놓고 그 위에 테이블보도 씌우고, 또 내 책도 쌓아 놓고……. 제대로 못한 사람은 바로 납니다.」 내 첫 세 권의 작품을 읽어 본 사람이 거의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며, 그러니 책을 사서 내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서는 독자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마치, 은혜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내 반지에 키스하기를 기다리는 교황처럼, 그렇게 앉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타나질 않았지요.」 약 40분이 지난 뒤, 상점 지배인이 점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서 줄들을 서라고. 책을 사려는 것처럼 하란 말이야.」 그러나 그래도 책이 팔리질 않자 지배인은 다시 점원 둘에게 말했다. 「자, 여기 7달러씩 줄 테니 가서 줄을 서서는 책을 사라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돈을 흔들면서 말이야.」 그 우울하고 고통스러운 날 팔린 책이라곤 딱 두 권이었다. 제임스 A 미치너 장편소설 <소설 상> 54p     


그는 온종일 도서관에서 사는 것 같다. 먹고, 자고, 화장실 가는 1차원적 생리현상을 하지 않는 동안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 같다. 어떨 땐 ‘저 양반은 잠을 언제 잘까?’라는 생뚱맞은 걱정까지 들기도 한다. 관리하는 작가가 비단 나뿐만은 아닐진대, 그의 오장육부에는 작가와 글로 꽉 들어차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거듭거듭 난 그가 ‘실력자’이기를 바란다.    


그는 이번 주말 나에게 ‘쉼’을 허락했다. 그런데 지금도 난 그를 위한 ‘헌정 시’같은 이 글을 앉아서 또 끄적이고 있으니. 그가 ‘활자 중독자’라면, 난 그의 편집 벽에 홀딱 빠져 있는 강가 중독자인 듯. 그가 나를 ‘작가니임~’이라고 부르면, 나는 그 온순한 작가가 된다. 그러곤 허리 부러지게 앉아서 괴발개발 쓴 원고 수정분을 툭 던진다. 그러면 곧바로 걸려 오는 전화음과 이어지는 맑고 고운 그 음성 ‘작가니임~’ 난 필시 그가 ‘실력자’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이렇게 한 방향을 보면서 걷고, 아니 달리고 있다. ㅋ

그는 내게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같은 ‘대문호’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원한다. 말이 쉽지...그래도 ‘작가님은 할 수 있어요.’라고 또다시 나를 글쓰기의 늪으로 확 밀어 자빠뜨린다. 그런 그가 나는 고맙다. 그래서 우리는 실력 있는 편집자와 실력 있는 작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희망은 꿈을 현실이어주는 ‘동기부여’이다. 실력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한 세기를 대표하는 불세출의 작가와 편집자가 등장하는 건가. 꼬르륵. 아 c, 일단 밥부터 먹자.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      


그녀에게 책은 전국 아니 전 세계 서점의 서가에 꽂혀 독자들이 뽑아 주기를 기다리는 미적 목적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종종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떤 책이 가치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책의 장점을 발견해서 책을 구입하고 또 나중에 가서는 <이 작가가 다음번에는 무슨 책을 낼지 궁금한데>라고 말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바로 글쓰기고 또 출판이에요.」 우리는 정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통찰력, 재능, 언어에 대한 사랑, 이야기에 대한 정열, 그리고 좋은 책을 만들려는 노력 등을 나누며 서로에게 감화를 주는 짝이었다. 우리에게는 또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그렌즐러 시리즈를 멋지게 매듭짓겠다는 신념이었다. 제임스 A 미치너 장편소설 <소설 상> 70~71p
웬지 이 작품은 느낌이...99%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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