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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Nov 16. 2024

밀리환초

갇힌 섬 3

동굴 안에서 배식이 이루어졌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저마다 양은그릇을 하나씩 들고 서 있었는데, 죄다 찌그러져 밥그릇인지, 깡통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밥통이든, 깡통이든 그릇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은 많지 않았다. 일본군은 배급망이 끊긴 이후로 식량을 최대한 아꼈다. 멀건 국물에 쌀보리는 수저로 몇 번을 헤집어야 바닥에서 겨우 몇 톨을 구경했고, 해초류와 작은 생선 부스러기가 전부였다. 조선인들은 피죽도 먹지 못해 얼굴이나 피부에 핏기가 없었다. 대부분 영양실조에 의한 각기병에 걸렸고, 강제노역에 시달리면서 밤새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징용자들은 환초 중심부에 건설 중인 비행장 활주로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조선에서 끌려온 인원은 200명 남짓이었는데, 일본군까지 합하면 환초에는 약 300명이 동굴에서 생활했다. 이들이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땐 굴 밖에 막사를 쳐 지냈지만, 변덕스러운 날씨와 태풍에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동굴 생활이 벌써 3년째. 동굴 안에는 또 다른 굴이 여러 개 있었다.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편 2개 굴에선 일본군이, 왼편 4개 굴에는 조선인 사오십 명이 먹고 잤다. 장순팔과 김선재, 김동영은 마지막 4번째 굴에서 기거했다. 장순팔은 전남 담양, 김선재와 동영은 순천 출신이었다. 이들은 갑자기 마을에 들이닥친 총칼 든 일본군들에게 강제로 징집돼 끌려왔다. 일본군들은 주로 장정들을 차출했는데, 밥을 지을 부녀자들도 여럿 차에 실었다. 사람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돼지 마냥 군용 트럭에 올랐다. 이후 부산으로 이동해 배를 타고 일주일을 걸려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밀리환초였다.      

날씨가 맑은 날, 환초의 밤하늘에는 별이 소금을 뿌려놓은 듯 반짝였다. 동영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굴 밖으로 나와 백사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비가 그친 뒤 별은 더욱 선명했고,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쏟아져 내릴 듯했다. 하늘을 바라보던 동영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잘라믄 안에서 잘 거이지, 와 밖에 나와 궁상을 떠누?”

인기척을 낸 건 장순팔이었다. 장순팔을 알아본 동영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됐다. 그냥 누워 있시라. 내가 뭐라꼬 일어나누.”

“아재 땜에 잠이 홀라당 깨부렀소.”

“와, 잠이 안 오나?”

순팔은 동영의 그늘진 얼굴을 바라보면 물었다. 

“할압씨 때매 안 그렇소. 먹을 것도 없시매 통 들질 못하니 얼매나 버틸랑가 모르겄어요.”

동영의 말을 들은 순팔도 걱정이라는 듯 한숨을 후, 하고 내쉬었다. 

“아재가 바다에 빠져 뒈져뿐다고 난리를 칠 때 솔직히 말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믄 그렇게 가는 게 당신한티 차라리 맴 편한 걸 수 있겄다 싶어서.”

“근디 왜 뜯어 말리셨소?”

“니 때문이다.”

“지 때문이라고요?”

“할압씨 잘못되믄 니는 어쩌겄냐. 너도 따라간다고 난리 칠 게 뻔헌디. 우야튼 해방이 되믄 다 함씨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겄냐.”

순팔의 말에 동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버지뻘인 순팔의 진심에 동영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별똥별 하나가 수평선을 향해 빠져들듯 지나갔다. 두 사람은 별무리를 말없이 쳐다봤다. 

“우덜 동네에도 별이 저러코롬 밴짝거리고 있을긴데.”

혼잣말하던 순팔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동영은 촉촉해진 그의 눈빛을 봤지만 모른 체 했다. 별똥별이 하나 더 바다를 향해 떨어졌다. 환초의 밤은 길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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