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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Nov 24. 2024

밀리환초

죽은자와 남은자 1

김선재가 죽었다. 장순팔과 김동영이 새벽녘까지 별의 존재를 확인하고 굴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고 난 한 두시간 쯤이었을까. 그는 그들이 굴 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잠들지 않고 있다가 바닷가로 나갔다. 그리고 밀려드는 바닷물에 몸을 맡겼다. 허리춤까지 물살이 들어왔을 때, 그는 죽음을 각오했다. 이미 각오한 죽음이었지만, 막상 물살이 거세게 온 몸을 휘돌자 서늘함에 당황했다. 물결이 턱 밑까지 차 올랐을 때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절뚝이던 다리도 물 속에서 붕 떴다.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다. 어미 뱃속의 태아처럼. 세파의 모든 시련이 물살에 떠올랐다. 어린 시절 뛰놀던 순천 앞바다가 떠올랐다. 순천 앞바다에는 꼬막이 많이 났다. 꼬막은 벌교가 유명했지만, 그 시절 순천 앞바다에도 썰물이 지난 뒤 꼬막과 바지락이 천지였다. 어린 선재는 그걸 캐다 집에 가져갔고, 젊은 어미는 그걸 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의 아버지는 몰락한 양반이었다. 동내 훈장이랍시고 동네 꼬마 녀석 스물을 모아 놓고 천자문을 가르쳤지만, 쌀 몇 되가 노동의 대가였다. 실로 ‘노동’이란 건 알지 못했다.

물살이 이마까지 차올랐을 때 선재는 눈을 감았다. 잠시 눈을 떴지만, 앞이 뿌옜다. 몸은 계속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그의 기억에는 죽은 아비와 어미의 형상이 어렴풋이 맴돌았다.

“인저, 나도 그만 아배, 어매 옆으로 갈라요.”

그렇게 침잠했다. 그는 죽었다.

“할압씨!”

동영은 싸늘하게 젖은 몸뚱이를 부둥켜안고 오열했다. 선재의 죽음을 뒤늦게 들은 조선인들이 모두 나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장순팔이 장정 서넛과 함께 시신을 수습했다. 죽은 사람들을 수습할 때 쓰던 지게와 거적이 선재의 운구용으로 쓰였다. 돌돌 말아 얹은 가마를 타고 선재는 저승으로 향했다. 별도의 장례는 없었다. 일본군들은 조선인들이 굶어 죽거나, 풍토병에 걸려 죽거나, 물에 빠져 자살했을 때마다 시신을 불태웠다. 하지만 촌장 역할을 했던 선재에게만은 관대했다. 선재는 동굴 위 평야에 땅을 파고 매장했다. 조선시대 풍습을 따라 관을 짰다. 성대한 장례는 아니었지만, 나름 위엄있는 상제가 진행됐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일본군들 역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선재의 죽음으로 조선인들이 혹여나 집단행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산호초 섬인 환초에선 풀도, 모래도 사막 같았다. 땅은 깊게 파지 못했고, 덮을 흙도 넉넉지 않았다. 얕게 판 땅에 겨우 시신을 묻고, 비석 하나 세우지 못했다. 그렇게 김선재는 쉰아홉에 죽었다.

“할압씨, 죄송하요. 해방되믄 내가 꼭 모시고 고향 땅에 모시고 갈랑게 좀만 참으소.”

동영은 나직이 흐느꼈다. 곁에 있던 조선인들은 숨죽여 흐느꼈고, 그걸 본 일본군들은 총칼을 앞세워 군중을 흩어지도록 했다. 남은 자들은 동굴로 내려갔다. 멀리서 일장기를 단 배 한 척이 환초를 향해 다가왔고, 잔잔했던 파도가 일렁거렸다. 일본군들이 갑자기 부산하게 움직이며 방파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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