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꿈을 언제부터 갖게 되었나요?
기자 지망생이 현직 기자에게 묻다-4
기자라는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들과 가진 강의와 대화. 오늘은 네 번째 질문에 한 대답을 정리했습니다.
기자라는 꿈을 언제부터 갖게 되었으며,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대학 3학년 때부터 뭘 해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 아침방송을 보면서 아나운서를 해볼까, 기자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토익학원도 다니고, 방송아카데미도 다니고, 프리랜서 리포터도 잠깐, 아주 잠깐 해봤는데요. 나름 재밌더라고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방송사 시험을 봤습니다. 무려 7번이요. YTN부터 KBS, MBC, 부산방송, 전주방송, 대전 MBC 등등. 근데 안 되더라고요. 1차는 거의 서류인데, 여기서 떨어진 적은 없어요.
2차는 필기인 곳도 있고, 카메라 테스트인 곳도 있었는데요. 아나운서 같은 경우는 카메라 테스트가 2번씩이었습니다. 마지막이 면접이고요. 7번을 떨어져 보니 자신감이 바닥을 치더군요. 이건 아닌가 보다, 했지요. 그때는 방송사 신입사원 지원에 나이 제한도 있어서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전혀 성격이 다른 서울 강남에 있는 건설회사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갔습니다. 회사에서 먹고 자고 2년을 하다 보니까 적성에 맞지도 않고, 몸도 안 좋아졌습니다. ‘아, 이것도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영어학원을 다니고, 다시 책을 펴고 언론고시를 준비했는데요. 그러다 고향인 천안에 내려와 인터넷신문과 주간지를 발행하는 지역 신문사에 입사했어요. 기자는 사실상 저 혼자였고, 기사도 거의 저 혼자 쓰다시피 했는데요.
처음에는 3년 정도 해볼 생각으로 다녔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더 좋은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오겠지 하고 말입니다. 그땐 정말 밤낮없이 일했어요. 신문사 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기사를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조직 체계라는 건 다른 신문사에나 들었을 법한 얘기였습니다.
별수 없이 저 혼자 신문 보고, 뉴스 보며 맨땅에 헤딩했습니다. 새벽녘에야 겨우 기사 마감하고 집에 들어가면 녹초가 돼 쓰러져 잠들기 바빴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 주간지가 나오면 새벽에 차를 끌고 다니며 무가지(無價紙) 배달까지 했어요.
3개월, 수습이 끝날 즈음 스카우트 제의가 왔어요. 충청도에선 3대 일간지로 꼽히는 곳이었지요.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요. 그런데 안 갔어요. 그때 저를 데리고 있던 편집국장 겸 사장님께 인간적으로 미안했거든요.
3개월 동안 걷어 키워준 은혜를 배신으로 돌려드릴 순 없다는 마음에 꼬박 2년을 다녔어요. 2년 뒤 스카우트된 곳이 지금의 언론사입니다. 그때는 제가 청와대와 국회를 출입할 거란 생각은 상상도 못 했지요.
운 좋게 평생의 은인 같은 선배를 만나 ‘기자 다움’을 배웠습니다. 그 선배에게 받은 가르침과 배려는 제가 기자를 그만두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기자도 사람이고, 직장인인데 왜 유명한 언론사에서 돈 많이 받고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저도 그랬는데요. 그런데요. 15년 동안 기자생활을 해 보니까요. 의지할 만한 선배와 동료, 조직이 신뢰로 뭉쳐 든든히 받쳐준다면 비바람 불어도 버틸 힘과 의리가 작동하는 곳이 이 바닥 아닌가 싶습니다.
누군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요. 저는 ‘사람다운 사람’한테는 충성합니다.
*상단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