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전쟁

3

by 류재민

죽은 듯이 사라졌던 이결에게 첫 임무가 내려졌다. 보자기 안에 들어있던 장부로 고위관리의 축재(蓄財)를 조사하라는 명이었다. 그리고 내금위장으로부터 받은 쪽지에는 그 대상이 적혀 있었다. 이결은 쪽지에 적힌 이름을 보고 등골이 오싹하고 손발이 후들거렸다.

*

부원군 윤영식의 사가는 도성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날 그곳으로 스며든 것은 온기가 아니라 가면 쓴 그림자였다. 이결은 민 대비가 준 단도를 품에 넣은 채, 가문의 몰락을 알리러 가는 사자처럼 대문을 들어섰다. 녹다 만 눈이 마당 한쪽 귀퉁이로 치워졌다.

추포는 요란하지 않았다. 무사들이 앞마당을 점령했을 때, 윤영식은 아들이 왕이 된 것을 축하하는 연회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화려하게 차려진 잔칫상 위로 찬바람이 일었다. 이결은 당황해 일어나는 윤영식의 눈앞에 민 대비의 서신과 인장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부원군 대감, 경하드립니다. 아드님께서는 이제 나랏님이 되셨습니다.”

이결의 목소리는 깨진 얼음판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리고 대감께서는, 이제 나라의 큰 짐이 되셨습니다.”

윤영식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그 속도는, 그가 누렸던 권세의 세월만큼이나 가팔랐다. 이결은 무사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칼을 휘두르는 소리 대신, 가구들이 뒤집히고 비단 옷가지들이 찢기는 소리가 집안을 채웠다. 악공과 무녀들은 혼비백산해 뿔뿔이 흩어졌다.

같은 시각, 편전의 어린 왕은 앞에 놓인 두루마리를 불안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읽어보세요.”

민 대비의 잔잔한 목소리가 들렸다. 왕은 글자를 읽을 줄은 알았으나, 그 문장들이 담고 있는 무게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가졌던 금괴의 개수, 숨겨둔 토지의 평수, 그리고 맨 마지막에 적힌 죄명까지.

“왕은 사사로운 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했지요. 이제 결정을 하세요.”

대비는 상선이 가져온 붉은 인주를 가리켰다.

“이 자가 대감의 아비인지, 아니면 나라를 좀먹은 죄인인지. 주상의 손으로 직접 낙인을 찍으세요. 그것이 아비를 살리거나, 혹은 죽이는 길이 될 겁니다.”

왕은 고개를 들어 대비를 올려다보았다. 민 대비의 얼굴은 늘 그렇듯이 단아하고 평온했다. 왕은 떨리는 손으로 옥새를 쥐었다. 자신의 손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옥새가 비단 위에서 가늘게 떨렸다. 첫 조회 날, 왕이 된 아들을 향해 허리 숙여 인사하던 부친의 모습과 어머니 얼굴이 맞물려 떠올랐다.

왕은 옥새를 찍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결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어린 왕은 대비의 말이 곧 법이었다.

이결은 궐을 나오며 자신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는 명을 들었고, 행했을 뿐이었다. 결과가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든, 그건 자신의 몫이 아니었다. 그저 이 나라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을 뿐이라고 믿었다.

그는 나중에야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자신이 지킨 건 목숨이 아니라, 다음 명령이었다는 것을.

추국장에는 머리를 풀어헤친 윤영식이, 왕의 아비라는 이름마저 벗긴 채 칼을 쓰고 꿇어앉아 있었다. 땅 위에서 오른 냉기에 맨발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뜨거운 입김이 터진 입술 사이로 힘없이 빠져나왔다. 추국관은 의금부 대장 이이찬이었는데, 그는 화인이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 이 자리는 오래 기다린 자리였다.

“네 이놈! 나라의 문서를 위조해 땅을 넓히고, 백성의 고혈을 짜내 사익을 채운 죄를 인정하느냐?”

그는 죄목을 읽고 있었지만, 판결은 이미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이찬의 열거에 윤영식은 피식 웃었다. 비웃음에 가까운 행동에 이이찬은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저놈이 지금 여기가 어느 안전인 줄 알고? 여봐라, 저놈의 주리를 틀어라.”

윤영식의 허벅지에 막대가 끼워졌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비틀렸다. 윤영식의 입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그건 사사롭게 취한 게 아니다. 선조 대에서 물려받은 재산이고, 내가 평생을 모아 지킨 것이다. 구린내는 의금부 대장, 당신에게서 나고 있지 않은가?”

이이찬은 자신을 향한 윤영식의 저항에 당황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이이찬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대역죄인이 주둥이만 살아서 잘도 나불거리는구나. 언제까지 그 추한 주둥이를 놀릴 수 있을 것 같으냐. 여봐라, 저놈이 찍소리도 못 낼 때까지 장을 쳐라.”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주리를 틀던 병사들이 방망이로 바꿔 들고 윤영식의 온몸을 마구 때렸다. 옷이 핏물로 젖어 들었다.

“차라리 그냥 죽여라!”

윤영식은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이이찬은 얼굴을 실룩거리며 바닥에 침을 칵, 뱉은 뒤 추국장을 떠났다. 왕의 옥새가 찍힌 다음 날, 도성 입구에는 윤영식의 목이 효수됐다.

부원군의 참형 소식은 왕에게 슬픔보다 먼저 죄책감으로 와 닿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눈물로 슬픔을 표시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왕의 일거수일투족은 내관들 눈과 귀를 통해 대비전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날 밤부터 왕은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윤영식의 목이 공중을 둥둥 흔들렸다. 무릎을 꿇고 자신을 향해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기겁해 일어나면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전하, 못된 꿈을 꾸셨나이까?”

침전 내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안색을 살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어린 왕의 목소리에는 쏟아내지 못한 눈물이 그르렁거렸다. 왕은 민 대비가 두 번째 시험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왕은 두려움을 숨길 줄 알아야 한다.’

그걸 눈치챈 침전 내관은 대비전에 왕의 상태를 소상히 알렸다.

대비전의 아침은 늘 같았다.

민 대비는 새벽닭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꿈은 꾸지 않았고, 깨어났다는 감각도 희미했다. 잠과 각성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이곳에서는 하루가 시작되지 않았다. 그저 이어질 뿐이었다.

나인이 발소리를 죽이며 다가와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침구를 개키는 소리, 비단옷을 여미는 손길,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나는 숨소리가 차례로 겹쳤다. 민 대비는 찬찬히 거울을 들여다봤다. 늙지 않았고, 흔들리지 않았으며, 여전히 궁궐의 중심에 있었다.

“전하께서는 새벽 조회를 무사히 마치셨사옵니다.”

나인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다. 보고는 늘 그렇게 시작했다. 민 대비는 ‘무사히’라는 말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무사함은 기준이 아니었다. 아직 쓰러지지 않았다는 뜻에 불과했다.

“잠은 좀 잤다느냐?”

“자주 깨셨다 하옵니다.”

민 대비는 더 묻지 않았다. 왕이 잠들지 못하는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잠은 죄 없는 자에게나 허락되는 것이었다.

그녀는 찻잔을 들었다. 이미 식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뜨거움은 필요할 때만 쓰는 것이라고 여겼다.

“부원군 처리는 끝났겠군.”

“예, 마마. 도성 입구에….”

나인은 말끝을 흐렸다. 굳이 끝까지 들을 필요는 없었다. 민 대비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입술이나 손이 떨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것들은 오래전부터 주인의 감정을 따르지 않았다.

“주상은 알고 있느냐?”

“상선이 아룄다하옵니다.”

민 대비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계산이 끝난 뒤의 침묵이었다.

“알았다.”

나인은 숨을 돌렸다. 민 대비의 ‘알았다’라는 말은 무거웠다.

“한시도 눈을 떼지 말라 일러라. 울지 않는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다.”

“예, 마마.”

민 대비는 일어나 창가로 가 앞뜰을 내다보았다. 밤새 내린 눈은 이미 치워져 있었고, 어제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다. 궐은 항상 그렇게 움직였다. 피는 씻기고, 소문은 닫히고, 기록은 정리됐다. 남는 것은 이름과 기억이었다.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윤영식’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기억 남을지.

이름은 기록에 남겠지만, 기억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죽은 사람의 기억은 늘 산 사람의 이름으로 잊히기 마련이니까.

“오늘 주상에게 올라갈 장계는?”

“어제와 같사옵니다. 수결만 하면 되옵니다.”

민 대비는 창밖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수결은 형식이었다. 손은 왕의 것이지만, 그 손은 그녀가 잡고 있었다. 왕은 아직 어렸다. 자라기 전에 부러지는 것이 이 궐의 법도였다.

민 대비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자리에 앉는 동작은 습관처럼 익숙했다. 날마다 문안을 오던 선왕은 없어졌지만,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남아 있었다.

“주상에게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민 대비는 나인에게 일렀다.

“말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의문을 만드는 법이다.”

나인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두려움만 남겨두면 된다. 두려움은 오래가니까.”

말을 마친 뒤, 민 대비는 다시 찻잔을 들었다. 이번에는 한 모금 마셨다. 쓰지도, 달지도 않았다. 계절의 맛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또 다른 보고가 오고 있을 터였다. 민 대비는 등을 곧게 폈다. 하루가 또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시작된 싸움이, 다음 수순으로 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곳에서 살아남는 길은 단 하나라는 사실을.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 것. 그리고 필요가 끝나면 버려야 한다는 것. 민 대비는 그 일을, 아주 오래도록 해왔다.

*

“주상을 모셔오너라.”

민 대비는 엄 상궁에게 왕을 대비전으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침전에서 책을 읽던 왕은 ‘대비’라는 말을 듣자 책장을 덮지도 못한 채 일어났다.

“대비마마께서 저를 왜 부르는 걸까요?”

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으나, 엄 상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따라오라는 몸짓만 했다.

왕은 엄 상궁을 따라 총총걸음으로 대비전으로 향했다. 이윽고 대비전에 도착한 왕은 대비에게 큰절을 올렸다.

“어서오세요, 주상.”

“대비마마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무슨 일이신지….”

왕은 대비가 혼이라도 내면 어쩌나 불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떨궜다.

“안 잡아먹습니다.”

민 대비가 왕의 마음을 읽었는지 실소하며 안심시켰다.

“밤 잠을 잘 못 이루신다고 들었습니다.”

그제야 왕은 토끼눈을 들어 대비를 바라봤다.

“네. 궐 생활이 아직 익숙치 않아 그런가 봅니다.”

왕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시겠죠. 사가의 어머니도 얼마나 그립고 보고 싶겠습니까.”

민 대비는 마치 왕의 친모인 양 따스한 눈길을 던졌다. 하지만 어린 왕의 눈에는 민 대비는 여전히 무섭고 차가운 존재였다. 친모에게서 풍기는 구수한 누룽지 냄새도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중궁전이 비었습니다. 혼례를 올려야겠습니다. 그래야 외로움도 잊고, 후사도 보지 않겠습니까.”

어린 왕은 민 대비 입에서 나온 혼례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일곱 살 어린아이에게 혼인은 이제껏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자고로 가정을 꾸려야 마음도 안정되고, 국사도 편히 볼 수 있는 법입니다.”

민 대비는 또 자신의 만의 법도를 내세웠다.

“그래도 저는 아직, 혼례를 치르기에는….”

“됐습니다. 중전으로 걸맞은 처자를 알아보겠습니다.”

대비는 왕의 말을 끊었다. 이미 결정했고, 실행만 남았다는 통보였다. 왕의 의사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만 나가보세요. 수라를 좀 들어야겠습니다.”

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대비전에서 나왔다. 입안에서 맴돌던 ‘어머니’라는 말이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삼켜졌다.

대비전을 나서자 내관과 궁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왕은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왕은 발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내관을 따라갔다. 방금 삼킨 말이 가슴 속에 불편하게 남아 있었지만, 꺼내면 안 된다는 것만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침 수라를 물린 대비는 이번에 화인과 수인 당수를 불렀다. 이태겸과 이윤이 대비전 앞에서 마주쳤다. 둘 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비 마마, 좌상과 우상 영감 들었나이다.”

엄 상궁이 민 대비에게 둘의 도착을 알렸다.

“들라하라.”

대비전에 들어서자 다과상이 양쪽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느 쪽도 먼저 손을 댈 수 없게 배치된 자리였다. 두 사람은 다과상 앞에 가 앉으며 대비의 눈치를 살폈다. 민 대비는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왕의 곁이 비어 있다는 건, 나라가 비어 있다는 뜻이오.”

이태겸과 이윤 모두 대비의 말에 뒷목이 뻣뻣해졌다.

“마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윤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제까지 중궁전을 비워둘 작정입니까. 간택령을 내리겠소.”

“그래도 마마, 주상께선 아직 어리고,”

“그러니까!”

이태겸의 반박을 민 대비가 서릿발 같은 기운으로 차단했다. 이태겸은 입을 닫은 채 침을 꼴깍 삼켰다.

“더 시급히 가례를 치러야지요.”

“…….”

“두 분께서는 각자, 주상 곁에 앉힐 수 있는 사람을 데려오세요. 말미는 닷새 드리겠습니다.”

대비는 아예 날짜까지 못 박았다. 당수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대비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각자의 집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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