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농다리를 건너다

‘생거진천’ 이승을 거닐다

by 류재민

하늘은 파랬지만, 바람은 찼습니다. 호숫가에는 한 무리의 청둥오리 떼가 휴식을 취했고, 또 다른 무리는 날렵하게 물갈퀴를 휘저으며 좌우로 이동합니다.


오후의 햇살은 굴참나무와 청둥오리 떼를 지나 호수 위로 쏟아집니다. 수면에 부딪힌 햇살은 은백색으로 곱게 부서져 별빛처럼 반짝거립니다.


햇빛은 호수에만 내리는 게 아닙니다. 앞서 가는 딸의 머리 위에도, 손녀딸의 시린 손을 꼭 쥔 내 어머니 머리 위에도, 그 광경을 뒤에서 보며 따라 걷는 제 머리 위에도 내려앉습니다.


“집에 있기 갑갑하면 진천 롱다리나 다녀오자.”
“그런데가 있어요?”


코로나에 외출은 꿈도 못 꾸고 있을 때 걸려온 어머니의 전화는 반가웠습니다. 얼마나 긴 다리기에 ‘롱~다리’라고 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아빠, 나도 갈래.” 딸이 졸래졸래 따라나섭니다. 어머니와 딸과 함께 도착한 곳은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에 있는 다리였습니다.

딸과 함께 건넌 진천 농다리입니다.
“여기가 롱다리인가? 그리 길어 보이지 않는데..”
“‘롱’이 아니라, ‘농’이여, 농다리”


이곳을 자주 와 본 어머니는 ‘롱(Long)’다리인 줄 알았던 제게 바른 명칭을 알려주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다리가 아니라 돌무더기를 얼기설기 쌓아 올린 것 같아 보입니다.


중간중간 코가 빠진 것처럼 수로가 나 있고, 큰 돌 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넣어서 생긴 모양은 엉성하고 투박합니다.


이래 봬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라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천년의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버텨냈다고 하니 그 위용이 실로 대단합니다.


이 다리는 굴티마을(구곡리)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였으며 ‘농다리’라고 불리는, 독특한 모양의 돌다리(石橋)이다. 문헌에 따르면, “고려 초 임 장군이 세웠으며, 붉은 돌로써 음양을 배치하여 28수에 따라 28칸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총길이는 약 95m 정도이며, 사력 암질의 돌을 물고기 비늘 모양처럼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 후, 긴 상판석을 얹은 형태이다. 견고하여 장마에도 유실되지 않는데, 이러한 형태는 다른 것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이다. 진천 농다리는 국토해양부에서 주관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농다리를 지나는 하천과 더불어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선정되어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정받은 명소이다. [진천 농다리 안내판 전문]

위에서부터 진천 농다리와 등산로, 생거진천 유래 안내판입니다.

딸아이는 물 만난 고기 마냥 펄쩍펄쩍 뛰면서 다리를 건넜고, 저는 뒤를 따라갔습니다. 농다리를 건너가니 등산로로 이어지는 길이 나왔습니다. 고개를 넘어가니 평야처럼 펼쳐진 호수가 장엄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수변 데크를 따라 20여 분을 걷자 ‘하늘다리’라고 이름 붙은 출렁다리가 나왔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아빠를 걱정한 딸은 제 손을 꼭 잡고 조심조심,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늘다리를 무사히 건너가니 호수를 끼고 있는 매점이 눈에 들어왔는데요. 어르신 두 분이 커피와 과자, 아이스크림, 컵라면 등을 팔고 있습니다. 이름은 ‘청춘상회’였고, 상호명에 걸맞게 두 어르신 모두 옛날 교복 차림입니다.


삼대가 매점 앞에 앉아 하하호호 얘기 장단을 시작합니다. 소시지 두 개와 과자 한 봉지, 옥수수 수염차를 앞에 놓고 오후의 무료함을 달랬습니다. 바람이 샘이 났는지 고약한 찬바람을 후후 불어 제쳤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왔던 길을 돌아옵니다. 수변 데크를 지나 청둥오리 떼를 지나 농다리 앞에 다다랐습니다. 농다리 옆으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오르니, 여름철만 운영하는 인공폭포가 나왔고, 그 길을 끼고 도니 작은 돌계단이 길게 놓인 징검다리가 나왔습니다.


하늘다리 건너 매점 앞 포토존.
돌아오는 길,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는 딸과 멀찍이 앞서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

딸아이는 다시 폴짝거리며 앞서갑니다. 저는 그 뒤를 걱정스럽게 바짝 뒤따릅니다. 우리 딸, 가다가 행여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까, 안절부절, 노심초사, 전전긍긍. 맨 먼저 다리 끝에 도착한 어머니는 서녘 노을처럼 두 팔 벌리고 서 계십니다. 하늘은 맑았지만, 바람을 찼고, 바알간 딸의 볼은 햇살만큼 눈부셨던, 코로나 원년 12월, 생거진천(生居鎭川)의 오후 풍경입니다.


팁! 생거진천의 유래

진천은 예부터 물이 많고 평야가 넓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풍수해가 없어 농하가 잘되는 고장인 연유로 인심이 후덕하여 생거진천이요, 용인은 산자수명하여 산세가 순후하여 사대부가의 유명한 산소가 많다하여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으로 불리었다. 또한 이와 관련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니, 진천과 용인에 사는 동명이인(同名異人) ‘추천석’에 관한 것이다.
진천에 사는 추천석은 마음씨가 착하고 농사만 짓는 사람인데 저승사자의 실수로 용인의 추천석이 아닌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와 다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미 장사를 지낸 이후이기 때문에 용인의 추천석을 잡아들이고 그 시체에 진천의 추천석의 영혼을 넣어 환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환생하여 용인에 살았다고 하여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천군 생거진천의 유래 안내판]

오늘은 제 딸이 좋아하는 가수로 정했습니다. 마마무 '화사'의 <마리아>입니다.


*영상 출처: Hwa Sa(화사) - Maria(마리아) @인기가요 inkigayo 20200705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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