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왜 불렀나 알 것 같다

올해, 당신이 오르내린 삶의 계단은 어땠나요?

by 류재민
“방문하고 싶은데 사전 예약이 필요한가요?”
“인사만 드릴 거면 그냥 오셔도 됩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수분 빠진 나무처럼 건조하게 들렸습니다. 그래도 ‘방문 가능’이라는 대답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아버지께 다녀왔습니다. 사진 속 모습이 오늘따라 추워 보였습니다. 어느 여름날, 어느 섬에 놀러 갔다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요. 그땐 날씨가 더워 반 팔을 입으셨겠지만, 한겨울에 보는 여름옷차림은 유난히 춥고 외로워 보입니다.


KakaoTalk_20201220_151446712.jpg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모신 곳입니다.

전날 제 꿈에 오셨습니다. 아무 말도 없었는데, 표정까지 어두웠습니다. 무슨 일 있나 싶어 나선 길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가 가기 전, 한 번은 들러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지하층 입구에서 발열 검사를 한 뒤 계단을 따라 1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누가 왔나 하듯 내다보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 왔어요. 평안하시죠? 위층에 아버지 보러 왔어요.” 좁은 복도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 2층으로 올라갑니다.


아버지 자리는 중간 열 맨 꼭대기입니다. 아버지 앞에서도 절하고 일어서서 유골함과 사진을 번갈아 바라봅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걸어봅니다.

KakaoTalk_20201220_151447454.jpg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고, 내려오는 것이 삶의 계단처럼 느껴진 하루입니다.

“오랜만에 꿈에도 나오고,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면 추워진 날씨에 가족들 걱정돼서 오셨어요? 아버지 옷차림이 더 추워 보입니다. 생전 다정함이랑 담쌓고 살던 분이, 돌아가시니 변하셨나 봐요.”

아무 말씀이 없습니다. 흰머리 수북한, 반 팔 티셔츠를 입은 중년의 한 남성이 사진 속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다시 말을 건넵니다.


“거기는 좀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여긴 아주 난리 통이에요. 살아는 있어도, 산 사람들이 사는 곳 같지가 않아요. 마스크를 안 쓰면 움직이지 못하고, 사람들도 맘 편히 만나지 못하거든요. 1년 내내 이렇게 살았는데,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모르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세상입니다.”
KakaoTalk_20201220_151446936.jpg 추모공원 앞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개나리 잎사귀가 삐죽삐죽 솟아 나왔습니다.

아버지를 만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만나러 가는 길과 만나고 오는 길이 더 오래 걸렸습니다. 건물 밖에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개나리를 봤는데요. 초록색 잎들이 삐죽삐죽 뻗어 나오고 꽃눈이 툭툭 불거져 있습니다. 봄은 아직 멀었는데, 벌써 봄을 준비하고 있나 봅니다.


도로 위를 달리면서 여러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나는 올해 어떻게 살았나, 가족에게 다정했나,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친절했나, 주변에 민폐는 끼치진 않았나, 어머니께 걱정은 끼쳐드리지 않았나. 기자로서 얼마나 충실했나.

그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왜 저를 부르셨는지. 지나온 1년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다가오는 새해를 준비하라는 뜻이었던 모양입니다. 날은 따듯하고, 포근했지만, 바람은 찼습니다. 어쩌면 제 마음이 차가워 그리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차창 밖으로 까마귀 한 마리가 높지도 낮지도 않게 빈 논 위를 가로질러 날아갑니다.


오늘은 '앤씨아 (NC.A)'의 <너의 하루는 어때?>입니다. 휴일 오후 가족들과 '집콕'하며 따뜻하게 보내세요 ^^.

*영상 출처: 앤씨아 (NC.A) - 너의 하루는 어때? OFFICIAL M/V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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