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 갔다가 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를 휘돌았습니다. 오전의 끝 무렵 마을은 고요했고, 바람은 낮게 불었고, 구름은 천천히 해 주변을 지나갔습니다.
한참을 걷다 낯익은 옛 선로 주변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세월의 풍파를 거쳐서인지, 40년 전 모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선로가 놓였던 교각만 덩그러니 남아, 과거의 흔적을 떠올려 줄 따름입니다. 교각 아래에는 어릴 적 물장구치던 개울이 있는데요. 폭은 좁아졌고, 가뭄에 수량도 적었습니다.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물이 오염된 탓도 있지만, 젊은이들이 하나둘 시내로 떠나면서 뛰놀 아이들이 없습니다. 간간이 백로와 청둥오리 떼가 날아왔지만, 서서히 발길을 옮기거나 유유히 물가를 거닐 뿐입니다. 녀석들은 아이들처럼 시끄럽게 굴거나 조잘거리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 뛰놀던 개울과 기찻길 모습입니다. 40년 넘게 풍파를 거치면서 개울 폭은 좁아지고, 낡은 교각만 남았습니다.
저는 자주 이곳에서 또래 동무들과 놀았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담력을 키운답시고 겁 없이 높다란 교각 위로 성큼성큼 올라갔습니다.
교각 한가운데로 걸어간 녀석들은 선로에 귀를 바짝 대고 엎드려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들겠다고 했습니다. 선로에서 진동이 느껴지면 멀리에서 기차가 오는 신호라는 말을 믿고 저도 몇 번 따라 해 봤는데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선로에 엎드려 귀를 쫑긋하고 있으면 정말로 저만치에서 집채만 한 기차가 칙칙폭폭 거리며 오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엔 이미 폐선이 돼 기차가 다니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렸을 땐 집에서 시꺼먼 기차가 시꺼먼 연기를 뿜으면서 철로를 지나는 광경을 본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다녔나 앳된 볼이 저녁놀처럼 발갛게 물들면 그제야 동네 꼬마들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상여를 보관해 놓은 창고를 지나야 했는데요.
동네 어르신들 초상을 치르고 상여 메고 나가는 모습이 떠올라 어찌나 무서웠는지. 머리가 쭈뼛이 서고, 심장은 쿵쾅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습니다.
친구들이 여럿이면 그나마 덜했지만, 혼자 올 땐 눈을 질끈 감고 칼 루이스만큼 빠른 속도로 냅다 뛰었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정확한 터조차 찾기 어려웠습니다.
1시간가량 걷다 보니 어느새 출발지점인 시골집에 도착했습니다. 어머닌 하나밖에 없는 아들 점심상 차린다고 부엌에서 부산합니다. 뒷모습만 보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주름 하나 없이 참 고우셨는데, 언제 나이를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제가 벌써 40대 중반에 학부모가 되었으니까요.
요즘 따라 옛날이 그립습니다. 붕어와 피라미, 미꾸라지, 메기 같은 물고기를 잡다 지치면 물장구치고 놀고, 물장구치다 지치면 풀밭에 누워 떠가는 구름을 보며 하루를 보내던 시절이요.
자꾸 그립습니다. 미세먼지도 없고, 코로나도 없고, 마스크는 감기나 걸려야 며칠 쓰고 다니던 그 시절이요.
90년대 추억 돋는 노래 준비했습니다. ‘미스터 투’가 부릅니다. <하얀겨울>
*영상 출처: 미스터 투-하얀겨울 / Mr.2-White Winter (1993년)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