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요, 기레기 아니라 기자입니다

새해엔 세상을 좀 기깔나게 만들어 봅시다

by 류재민

처음 그 단어를 접했을 땐 오타나 오기(誤記)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암만 봐도 이상한 게 ‘기자’와 ‘기러기’가 무슨 연관성이 있어 그런 오류가 나왔나 싶었습니다.


뜻을 알고 났을 땐, 한숨만 나왔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기자를 하고 있나,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기자가 ‘기레기(기자+쓰레기)’로 낙인찍힌 세상에서 기사로 먹고사는, 제 이름은 ‘기자’입니다.


어쩌면 ‘기레기’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는지 모릅니다. 시대의 흐름에 이름만 달라졌을 뿐, 세상 사람들은 기레기의 조상 격인 ‘사이비 기자’라는 말에 익숙해 있으니까요. ‘기레기’와 ‘사이비 기자’ 중 누가 더 고약하고 그 정도가 심한지 경계를 구분하긴 힘듭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단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기레기와 기자, 사이비 기자와 기자 사이에는 어떤 교집합과 여집합이 존재할까요? 같은 기자인데, 누군 ‘쓰레기’ 취급받고, 누군 ‘기자’ 대우를 해주느냐는 얘기입니다. 그 판단의 기준은 바로 ‘독자’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독자들은 ‘깨시민(깨어있는 시민)’들입니다. 얄팍한 술책과 궤변으로 넘어갈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얕은 지식으로 ‘소설’을 썼다간 욕은 둘째 치고, 신상까지 탈탈 털리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그런 기자들을 가리켜 ‘기레기’라고 부릅니다. 또 그런 소리를 듣는 게 무서워 기사다운 기사, 비겁한 기자로 살아도 ‘기레기’라고 불립니다.


기자란, 국민의 세금을 받아 쓰는 권력이 국민에게 부여받은 돈(예산)과 권한을 허투루 쓰지 않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랩독(Lapdog)’이나 ‘가드 독(Guard dog)’보다 ‘워치독(Watchdog)’이 되고 싶었습니다.

“언론학자들에 따르면, 오늘 예로 든 세 가지 유형의 개들 외에 또 한 가지가 있긴 합니다.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눈을 감고 있는 언론, 슬리핑 독(Sleeping dog)도 있습니다.” 2016.4.27. jtbc 뉴스룸 앵커 브리핑 中

기자 생활 15년, 부침도 겪었습니다. “다들 가만히 있는데, 너만 유난 떨래?”라는 수모와 흰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길을 선택한 건, 바로 ‘나’였습니다. 그 길 위에서 저를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 주는 이들을 만났고 함께해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저희 남편은 신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역사의 초고라고요. 우리는 어쨌든 계속 기사를 써야 해요.”
영화 <더 포스트> 대사 중에서

달라질 건 없다고 포기하거나 멈춰 선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저냥 기자 수명은 연명할 지 모릅니다. 대신 스스로는 비겁함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세상은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지고 말 겁니다. 기자가 ‘기사’를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땅의 기자님들, 올 한 해 수고하셨습니다. 새해에는 ‘기레기’보다 ‘기자’라는 소임에 충실하고, 특종도 많이 하는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좀 기깔나게 만들어 봅시다. 저도 잘하겠습니다.


간만에 ‘뽕 필’ 충만 노래로 준비했습니다. 김수찬의 <엉덩이>입니다.

*영상 출처: [김수찬] 엉덩이 (HIP) M/V YouTube

*이미지 출처: jtbc뉴스룸 ‘앵커브리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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