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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로 Jun 18. 2023

커피를 왜 내리나?

직접 경험하는 커피 드립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퇴직 후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치기에는 배움이 최고인걸 그간 살면서 터득한 바 있기에 이렇게 짬날 때 이것저것 배워두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젤 쉬운 전기압력솥에 밥 하기는 이미 수준급으로 배워서 보슬보슬하고 윤기 자르르 흐르고 밥알이 살아있게 지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사진만 잘 찍으면 요리책에 올려도 될 정도로 맛갈스런 북엇국을 끓일 줄 압니다. 계란이 속살 비치는 색깔의 양파와 북어랑 콩나물 사이에 몽글몽글 퍼져있는 걸 보면 입맛이 돌게끔 끓여냅니다. 다른 요리도 덤벼보고 싶은데 어느 날은 마땅한 재료가 없고, 어느 날은 얼른 먹고 나가야해서.... 또 하루 맘먹으면 앞끼니에 남겨둔걸 얼른 해치워야 해서.... 등의 갖가지 핑계로 미루며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아무튼 다른 건 맘만큼 빨리빨리 배우지 못하고 있는데 커피는 열심히 내리고 맛을 즐기고 있습니다. 학원 가서 배워보지 그러냐는 지인들도 있지만 돈 내고 배우러 다녀보질 않아서 낯설기도 하고, 시간이 많으니 독학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에 그 흔한 유튜브도 보지 않고 커피를 내리는 드리퍼랑 필터, 포트 구입부터 직접 했습니다.

쿠팡을 클릭하면 쇼윈도를 두리번거리는 바쁜 눈알의 활력으로 기분이 좋다. 부디 사려는 드리퍼랑 필터만 골라야 할 텐데... 기도하며 쿠팡을 돌아다니다 성공적으로 드리퍼와 포트와 필터만 구입했다. 매번 느끼는거지만 쿠팡에서 수많은 유혹에 빠져 과소비 않고 실속 있게 구입하는 분들은 정말 정신력이 최고인 거 같다. 다음은 커피 가루를 사야 하는데 커피 종류를 잘 모르니 무작정 다들 즐겨마시는 스타벅스 커피를 사기다. 예상대로 친숙한 그림으로 포장된 여러가지 로스팅된 커피가 있었고, 나는 Dark rost를 집어 들고 핸드드립용으로 갈아달라고 해서 가져왔다.

일사천리로 여기까지 해낸 자신한테 감동하면서 커피를 내리는데 일단 분위기에 뿅 가고, 다음으로 향기에 감동하고, 다 내려놓고 맛보기 전에 설렌다. 이 맛에 커피를 내리는 거 같다.

매번 반복되는 거지만, 드리퍼에 필터 깔고나서 커피통을 열어 뿜어져 나오는 고소한 볶은 커피 향을 커피 가루에 얹어 두 스푼 덜어내어 필터위에 쏟아놓는 재미가 지겹지 않다. 커피 포트에 물을 끓이는데 조금 있다 들려오는 뽀글뽀글 소리는 시각, 후각, 촉각의 3D에 청각을 곁들여 4D로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제부터 노하우가 필요하다.

독학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 같다. 커피량/물온도/내리는 량/드립 속도 등은 하나하나 조합해 가면서 찾아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처음에 두 스푼 커피를 필터에 담고, 텀블러를 가득 채울 정도로 내려본다. 맛과 향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텀블러가 불투명하여 색깔을 알 수 없어서 투명잔에 따라보니 딱 아메리카노 색깔이다.

한방에 해낸 것에 감동하며 천천히 음미하며 하루를 보낸다. 다음날 커피 두 스푼 반을 담고, 같은 텀블러에 내려보니 확실히 진하다. 와중에 발견한 게 드립 속도다. 필터를 가득 채울 정도 물을 유지하니 텀블러 한통 정도는 순식간에 가득 찬다. 하지만 다 내리고 필터 안을 보니 커피가 필터의 전면에 도포되어 있지 않아서 어느 부분은 그냥 물이 빠져내려 간 거 같다. 그래서 그런지 커피 맛이 가볍다. 기분 탓일까 싶어서 다음날에는 필터의 절반정도만 물을 채워서 드립을 했더니 커피가 필터를 두텁게 도포하고 있었다. 맛도 묵직하며 향도 진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걱정했던 시간은 지나고 경험은 실력으로 자리 잡는다. 커피 종류도 많고, 내 혀도 훈련해야 해서 앞으로도 차츰 더 많은 조건과 맛을 비교하면서 나만의 커피 내리는 법과 맛을 만들어 내고 싶다.

은퇴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뭘 해야 할지 걱정부터 앞서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불안감만 커지고, 좋아하는 일 하라는데 뭘 좋아하는지 몰라 헤맨다. 이러한 과정이 나만의 커피 맛을 찾는 시간과 똑 닮았다. 

불안한 시간에서 하나하나 이뤄가는 시간으로 바뀌면서 언제 어떻게 연결이 될지 모르지만 이렇게 직접 체험하고 깨우쳐 나가면 새로운 인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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