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밝은 모습으로 오늘 할 업무들을 생각하며 출근했다. 햇살이 기분 좋게 사무실을 가득 채워 구석구석 먼지들을 긴장케 하는 쾌청한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며칠 전 저녁에 술 한잔 하며 얼핏 얘기 들었던 퇴직 통보를 전화로 연락받았다. 전화이기 때문에 멀리 느껴지는 건지 아니면 정신이 혼미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이야기는 “퇴직자 결정이 났다. 이번 달 말 발령 난다.”라는 것이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앉아 있다가 ‘뭘 놀라나? 연구소장도 해봤고, 제일 선임이라서 준비하고 있다고 늘 얘기했듯이 올 게 왔을 뿐이잖아.’라고 마음 챙기며 사무실을 둘러봤다.
엊그제 사놓은 회의 테이블에 정가로이 놓여있는 다과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캐비닛 안에도 가득히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여분의 다과가 있고, 냉장고 안에도 스타벅스 카페라테 병이 줄 맞춰 도열되어 있다. 이별을 위한 만찬을 미리 준비한 건가?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사무실한테 그동안 정들었었다고 내가 없어도 새 주인과 잘 지내라고 작별 인사를 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홀가분해졌지만, 문밖에 있는 주변 직원들한테는 억지로 슬픈 표정을 지으며 소식을 전한다. 어느 정도 덤덤히 각오는 하고 있었다는 마음이 읽힐 정도 표정으로 나가서 인사했고, 애써 태연해지려고 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나아질 게 없었고, 그러면 마음도 따라서 처참해지고, 왠지 화분이라도 하나 던질 거 같았다. 직속 후배들을 불러서 공지하고, 앞으로 어떻게 정리할지를 설명한다. 얘기하는 내내 눈시울을 붉혀가며 터져 나오는 안타까움을 억누르는 후배들의 모습에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먹먹해지는 걸 가누기 힘들었었다.
지금 생각해도 목 주위로 시큰한 근육들의 자극이 느껴지고, 스프링클러 물줄기 같은 눈물이 눈가를 뚫고 나오려 애쓰고 있었다. 다시 그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이런 지경인데 그 순간 나는 어찌 태연히 직원들과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할 수 있었을까? 그건 앞서 몇 차례 경험했던 선배님들의 퇴직 순간의 모습을 닮고 싶지 않은 나의 욕심이 컸기 때문인 거 같다.
과거에 선배님의 퇴직 소식을 듣고 늦가을 이른 새벽 물가에 피어오르는 안개가 머릿속을 꽉 채운 듯 멍해지면서 곧, 일 잘하는 선배를 내치는 회사에 대한 원망과 당장 함께 계획했던 많은 것들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앞으로 같이 못 하는 안타까움에 마음 아팠었다. 공원에는 나무로 만든 것 같지만, 시멘트라서 차가움에 놀라게 하는 벤치가 있다. 나무 모양 페인트칠의 기만을 투덜대게끔 장식 측면에서는 어수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 쓰러지지 않고 나를 받쳐주는 듬직함이 있다. 이런 공원의 벤치 의자 같은 선배님의 빈자리를 어찌할지 두려움에 떨며 선배님의 분노한 손짓을 도와 짐 정리를 묵묵히 할 때, 같이 화가 나는 걸 참느라 불끈 힘을 주어 주먹을 몰래 쥐어보기도 하고, 책상이라도 한번 내리치고 현실을 한탄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던 기억이 떠올라 등짝이 흥건히 젖는다.
언젠가 신문에서 부부 사별 시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직 겪어보지 않은 탓인지 존경하는 상사와의 이별이 주는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가슴 졸이는 시선을 받았던 순간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고, 후배들에게 안겨주기도 싫다. 이러한 마음이 나를 잘 달래주는 거 같다.
그리고 나만의 이유가 또 하나 있다. 회사에서 깨달은 바인데, “부하가 상사를 생각해 줄 수 없고, 상사가 부하를 살펴줘야 한다.”는 거다. 이 생각이 지금까지 나를 만드는 데 일조해 왔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과거에 많은 일들이 닥친 순간을 들여다보면, 선배는 이미 유사한 일들을 경험해 보았고, 후배들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예방하거나 발생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수 있는 사람은 항상 선배이므로 선배가 후배를 생각해 줄 수 있지 후배가 미래를 예측해서 선배를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유사한 경험을 하고도 대비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지 않고, 처음 겪는 후배한테 미리 예방하지 못했다고 입에 거품 물고 다그치거나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으며 야단하는 몇몇 선배님의 초라한 모습이 싫었다. 마지막 순간에도 이 말은 나를 올곧이 서게 하고, 후배들 앞에 당당한 모습을 지키게 해 줬다.
다시 말해 헤어짐을 안타까워하며 회사의 처분이 잘못되었다고 위로해 주는 말에 빠져들어 원통해하고, 아쉬워하고, 그러다 보면 원망스러운 일들도 떠올리고, 분개하며 이 마무리하는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다. 과거 선배님들과는 달리 퇴직을 어떻게 만나야하는지 모범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직원들의 입장에서 당장 닥친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경험을 떠올려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예를들어 새로운 분과 과거에 내가 어떻게 만났었는지 얘기해 주고, 나와 함께한 많은 미래 계획 중에 어떤 건 지켜나가면 좋겠다는 얘기도 해주고, 처음 만났을 때 부족해 보였던 게 있으면 이번에 만나는 후임한테는 이렇게 대해주면 첫인상이 좋을 거라는 얘기도 해주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을 하고 보니 좀 더 태연한 모습을 지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집에서 한 달여 쉬면서 보내는 시간까지 원망을 감출 수는 없었다. 집에서 뒹굴며 쉬는 게 아니고 저녁이 되면 지인들과 식사하며 이별을 나누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회사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리기보다는 제가 없는 회사 정황을 듣고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회사를 원망하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리더로서 직원들의 성장플랜을 세우고, 해외고객 확보에 노력하고 성과도 냈고, 여러 제품군에 800명이 넘는 연구 인력을 안정된 조직문화로 이끌었고, 3조가 넘는 매출로 캐시카우 역할에 충실했었다. 그런데 이런 성과는 쳐다보지도 않고, 승진과 퇴직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자의 개인적인 친밀도 그리고 조직이나 프로젝트 수를 감안하지 않는 서투른 실적 비교 등, 공정하지 못한 판단으로 퇴직을 결정한 특정인들을 국내 산업을 지탱하는 굴지의 회사에 걸맞지 않은 저급한 실력자들로 규정하고 헐뜯고 비난하고 원망했다. 이런 생각들은 끝없이 자가 발전하여 결정에 일조할 수 있는 사람들은 다 자신의 생존만을 중시하고 조직의 비전이나 회사의 미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힐난한다. 반대로 ‘나는 지금 단순히 퇴직한 것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회사를 걱정하는 마음이다.’라는 불평의 합리화도 끌어낸다.
때론 지인들과 이별주를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토로하면 같이 안타까워해주는 모습을 보며 가정이나 추측 혹은 중상모략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확신과 세상을 꿰뚫어 보는 명석함을 가진 나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들 내게 남는 건 뭔가? 원망해서 난 뭘 할 건가? 하며 당장 내일을 생각해 보니 플라타너스 잎들이 우수수 가을에 떨어지듯 원망과 헐뜯는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렇지만 그 생각에 빠져있을 때 나는 얼마나 큰 좌절과 원망을 마음에 새겼을까? 지금 그때를 다시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지고 빨갛게 달아오르는데····.
7년 전 위암에 걸렸을 때 의사 선생님께 원인이 뭐라고 물었더니 스트레스 직종이 연관성 있게 나온다고 하기에 “저는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라고 했더니 그건 말이 안 된다고 하시며 스트레스는 폭풍 같아서 받고 안 받고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저 빨리 수습하고 잊어버리는가? 아니면 마음에 남아 계속 영향을 주는가? 사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란다. 한번 맞닥뜨린 원망과 좌절의 순간은 금세 잊을 수 있지만 스트레스 한 방 먹은 충격은 어쩔 수 없이 몸과 마음의 큰 상처를 줬을 것이다. 흐르는 물과 같다면 얼른 가버리게 수문을 활짝 열고 싶다. 차에 묻은 오염과 같다면 깨끗이 씻기도록 소낙비 내리는 아스팔트 잘 깔린 주차장 한가운데에 내놓고 싶다. 자꾸 씻어 내리거나 다른 기억으로 바꿔치기를 노력하면 곧 까마득히 오랜 일이거나 잊어버린 과거로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내 맘속을 들여다보니 이렇게 큰 아픔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겉으로는 괜찮은 듯 지낸 시간이 내 맘의 이중성인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페르소나인지 궁금하다.
어쨌든 두 가지 마음으로 나를 진정시키고 있다. 첫 번째로 내가 그랬듯이 회사에 남은 후배들도 당연히 당황하는 나를 지켜보기가 힘들 거니까 나는 좀 더 편하게 떠나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이 마음이 뒤끓는 혼란과 나를 몰라주는 상사에 대한 불만과 정치가 승리하는 냉혹한 현실에 좌절당한 나를 진정시켜 줬다. 두 번째는 오늘을 어떻게 보내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어떻게든 현재 점들이 연결되어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스티브잡스의 스탠퍼드 연설을 믿고 원망보다는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며 그 말을 따르고 있는 마음이 나를 진정시키고 있다.
작년 말에 퇴직한 후 느끼고 경험한 이런저런 일에 관해 기억을 더듬어 얘기했다. 정말 당황한 시간이었기에 몇 달 전 일이지만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나서 다 얘기 못 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조금 정리가 된다. 먼저 나온 분들도 있을 것이고, 앞으로 나올 분들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직원의 퇴직과 달리 임원의 퇴직은 수시로 명령하므로 예상치 않게 갑작스레 다가온다. 60세가 다가오면 조만간 퇴직하겠거니 생각은 하지만 올해 일지 내년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퇴직을 통보받는다. 매년 누가 나간다더라 하며 인사 시기가 오면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하고, 정년이 다가오니 다 예상한 거 아니냐는 듯이 주변에서 바라보지만, 막상 퇴직을 통보받으면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서로 맘을 나누면 맘 정리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되어 글을 쓰기로 했다. 서투른 이 글이 누군가에 공감받고 이 세상 어느 한 편에서 똑같은 마음을 이겨내고 앞으로의 30년을 위해 지나온 30년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