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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Jul 29. 2022

자비를 베풀어 그를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놓아버림, 자유, 해방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던 중이었다.

   무리하게 중앙선을 넘어 추월을 하려던 차와 부딪힐 뻔했다. 상대 운전자가 창문을 열길래 사과하려는 줄 알았는데, 되려 나에게 화난 얼굴로 소리 지르고 있었다. 잘못과 불법은 본인이 저지르고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었다.


   긴 말다툼이 이어졌지만, 그는 끝까지 자기의 잘못은 인정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나는 차에서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고 스마트 국민 제보 어플로 신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중앙선 침범으로 벌점과 과태료를 내게 할 생각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그 뻔뻔한 태도에 수시로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서, 곧 발부될 딱지에 화를 내고 있을 그 소시오패스 같은 인간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신고할 테면 하라'는 그의 뻔뻔한 얼굴은 곧 똥 씹은 표정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난 어젯밤에 어플을 켜고, 신고절차를 완료했다.


   복수할 수 있다는 마음에 신이 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화가 남아 있었다. 사실 며칠 째 그 마음들이 수시로 교차하고 있었다.


   나는 어두운 거실 바닥에 가만히 누웠다.

   생각해보니 이 일로 지난 며칠 동안 내 마음은 많은 불편을 겪었다. 내 소중한 시간들이 분노를 하느라 지워져 버린 기분이었다. 그를 괴롭혀줄 수 있는 칼자루는 지금 내가 쥐고 있다고 한들, 내 시간은 이미 지워졌고 마음은 여전히 평화롭지 않았다.


   "아, 그냥 놓아버리면 그만이었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달궈진 쇳덩이 같은 생각을 나는 며칠째 쥐고 있던 것이었다. 단지 화가 났다는 이유만으로.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화는 결국 '내 마음'을 힘들게 하고, '내 눈'을 가리고, '내 시간'을 지워버린다는 것을


   늦었지만, 이제는 놓아버리기로 했다.

   조용히 휴대폰을 집어 들고, 신고를 취소했다.


   자비를 베풀어 그를 너그러이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나를 위한 행동이었다. 

   나를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분노로 인해 내 소중한 순간들을 나도 모르게 지우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함이다.


   신고를 취소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대나무 밭에 바람이 불면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도, 바람이 멈추면 다시 고요해진다고 한다. 

   

   살다 보면 내 마음에 또다시 바람이 불겠지만, 바람이 멈추거든 내 마음도 이내 고요해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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