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20대 때 나에게는 외국인 친구들이 꽤 많았다.
친구들이 대부분 외국인이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외국인과 결혼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준비(?)'까지 하셨을 정도다.
미국, 캐나다, 영국, 남아공 같은 영어권 친구들 뿐만 아니라 베트남, 인도, 중국, 필리핀, 스리랑카 등의 출신의 유학생 친구들도 두루두루 많았다. 한두 명으로 시작한 인연들이 각자의 친구들을 소개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 초대되기를 반복하며 점점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
이 하나의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그것 이외에는 많은 것이 달랐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동남아 유학생 친구들 몇몇은 영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단어와 표정과 손발 짓을 섞어가면서도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 깔깔대며 잘 놀았다.
국적뿐만 아니라, 문화와 가치관이 달랐고, 생각들도 참 다양했다. 당연히 서로에게 학연, 지연의 연결고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관계를 호칭하지 않았다.
형, 동생, 누나, 언니, 오빠는 물론 선후배 따위의 위아래가 없었다. 나이가 많건 적건 그들과 나는 동등한 친구사이였다. 이들은 그저 나를 내 이름으로만 불렀고, 나도 그들을 그들의 이름으로 불렀다.
정해진 것이 없다 보니 모임의 이름 같은 것도 없다.
이렇게 모였다가, 저렇게도 모였다가, 가능하면 나타나고, 모르는 사람도 일단 가면 환영받는다. 생각나면 부르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나는 어디를 가봤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같은 사소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각자의 직업과 환경과 문화를 이야기할 때에도 서로에게 귀 기울여주었다. 자유로운 관계 속에서 존칭은 없었지만 오히려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했다.
모두 다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다르다'라는 기본 전제를 서로 알기 때문인지 한국인들처럼 공통분모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고, 서로의 관계를 정의하거나 울타리를 치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맞으면 만나고 맞지 않으면 안 만나면 그만이었다.
고국이나 다른 나라로 떠나는 친구들이 생길 땐 친구의 안녕을 기원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웃긴 건 모르는 사람도 환송회에 참석했다. 떠나는 친구에게 '난 널 몰랐지만 오늘 만나보니 괜찮은 친구였네.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걸. 행운을 빈다.'라고 말하는 상황도 여러 번 봤다.
끈끈함은 없지만, 가볍고 자연스럽고 복잡하지 않았다.
누가 떠난다 해서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고,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에 행운을 빌어주며 이별했다. 그리고 또 새로 만나는 누군가를 반겼다.
언젠가부터 그런 친구들이 내 주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현재 내가 만나거나 연락하는 사람들 중에 사업이나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을 제외하면 단 한 명도 없는 것 같다.
나는 늘 사업성과 생산성이라는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16년간 사업은 성장하고 돈을 벌었지만,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즐거운 취미 하나 남아있지 않다.
어제 아무런 연락도 없이 택배가 도착했다.
사업상 알게 된 지인이 보낸 명절 선물이었다. 그래서 나도 아무런 연락 없이 비슷한 금액대의 선물을 보냈다. (내년부터는 이런 무의미한 물물교환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 멋지게 포장된 굴비세트 보다, 옛 친구들이 직접 만들어준 반쯤 태운 브라우니, 인도에서 배웠다는 (더럽게 맛없던) 카레와 인디언 라이스가 무척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