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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Aug 28. 2022

조용한 사직 quiet quitting

조용한 퇴직, 코스트 파이어, 탕핑 躺平

   시원하다.

   이제 여름이 꺾이고 가을로 접어드는 것 같다. 더위에 지쳐 선선함과 추위에 대한 기억을 잃을 즈음이면 이렇게 가을이 불쑥 찾아온다. 아침 공기는 이미 가을이다.


   오늘은 할 일이 있어 일찍 출근한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 보니 이미 차가 많이 빠졌다. 대부분은 각자의 업무 위치로 가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와이프는 알바 잘하고 오라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아마도 나의 일 평균 근무시간이 4시간 정도여서 그런 농담을 하는 것 같다. (물론 바쁠 때는 강도 높은 근무를 하기도 한다.)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기도 하니, 어쩌면 나는 이미 파이어를 한 것은 아닌가 할 때가 있다.


   물론 약간의 일을 하는 '코스트 coast 파이어'의 형태로 말이다.


   파이어를 원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어 한다. 파이어를 이룬 후에는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독립적으로 자기 사업이나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려는 이들도 꽤 있다.


   그런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결국 '자기 결정권'이 아닌가 싶다.


   직장인들은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며 휴가도 내가 원하는 때로 정하기 어렵다. 즉흥적으로 외출하거나 하루 쉬는 것도 자기 혼자서 결정할 수 없고 누군가에게는 허락을 받거나 알려야 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도 웬만하면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내 수입마저도 협상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어느 정도 '자기 결정권'이 있다.

   1인 기업이므로 신경 써야 할 직장 상사나 동료가 없다. 그리고 십수 년째 업무를 최적화하고 있어서 투입되는 노동량과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안 되는 최적화라도 또 언젠가 된다.)


   요즘 외국에서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 확산되고 있다.


   겉으로는 '직장을 그만둔다'는 의미지만, '직장에서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속뜻을 가진다. 그 최소한이란 말 때문에 이들을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도 번아웃을 경험하고, 몸이 아파가며 일했던 때를 돌아보면 이런 시류를 이해하게 된다.


   파이어할 만큼의 자산은 모으지 못했으니, 현실적으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도 해서 ‘자신의 삶을 지키겠다’는 생각일 것이라 짐작해본다. 그들의 직장 상사나 고용주는 굉장히 싫어하겠지만 말이다.


   ‘최소한의 일만 한다’는 관점으로 보면 나도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을 하고 있다. 물론 사업을 하기 때문에 '조용한 사업(quiet business)'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은 생각을 조금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대신 회사가 최대한 자동으로 돌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시간, 노동, 자원을 최적화하는 것을 연구한다.


   일을 열심히(더 오래, 더 힘들게) 하는 것보다 양질의 결과물이 일정하게 산출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개선해나가면 내 일은 점점 더 적어진다.


   또 언젠가부터 더 많이 벌고자 하는 욕심, 경쟁 업체를 이기려는 생각, 끝까지 고객을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벌겠다고 생각한다고 더 벌리는 것도 아니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심신만 피폐해진다. 애써 설득을 해서야 간신히 거래가 시작될 만한 고객은 일을 진행하게 되더라도 다른 일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지금 내 고객에게 집중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의 최고를 주겠다는 마음이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게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랜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되었다. 마음이 좁아지면 잘 안보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돈 적게 쓰고,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쫓기지 않는 마음. 쉽지 않지만 하면 또 하는 거다. 별거 없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마음을 내려놓은 뒤로, 매출과 이익이 꾸준히 유지되거나 오히려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대박은 바라지 않는다.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안다.


   나도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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