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Nov 22. 2022

다이렉트 보험으로 환승하기

절약, 인간관계

   다이렉트 자동차 보험에 가입했다.

   절차가 꽤 간편해서 물 흐르듯 설계와 결제를 마쳤다. 결제까지 마치고 나니 기분이 조금 낯설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난 15년간 한 명의 지인 보험설계사와 모든 보험을 설계하고 가입해왔기 때문이다.


   오늘 재가입한 자동차 보험을 마지막으로 거의 모든 보험을 지난 2주간 교통정리를 마쳤다. 잘못 가입된 보험은 해약하고, 중첩되는 특약을 찾아 삭제하고, 필요한 부분은 보완하여 다이렉트로 새로 가입했다.


   이로써 매달 또는 매년 정기적으로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줄게 되어 현금흐름이 조금 더 늘어나게 되었다. 새어 나가는 돈구멍을 찾아 틀어막는 것도 버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내년에는 회사 보험도 모두 갈아탈 예정이다.)


   그가 보험설계사가 되기 전부터 가깝게 지내왔던 사이였다. 보험을 시작한다기에 가까운 관계를 담보(?)로 믿고 가입해왔다. 어렵고 복잡한 보험이지만, 친분 덕에 나에게 유리하게 알아서 해줬을 것이라는 믿음(희망사항)이 있었다.


   다이렉트가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선뜻 옮기지 못했던 이유는 그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다이렉트로 갈아타면 그동안의 나의 선의와 지출이 (나만 느끼는 것이겠지만) 전부 물거품이 될 것만 같았고, 내가 쪼잔한 사람으로 보이거나 뭔가 배신(?)하는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일처리 속도가 언젠가부터 느려졌다.

   나의 요청을 잊는 일도 반복되었고, 그러다 보니 매번 내가(고객이) 확인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잘못된 정보를 주는 바람에 불필요한 보험까지 가입해서 아까운 돈을 낭비하기도 했다.


   그에게 굽신거림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손님으로서의 기본 일처리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그는 문제의식을 못 느끼거나 내가 이해하겠거니 생각해왔을 것이다. 물론 제때 견제구를 던지지 않은(불만을 말하지 않은) 나의 잘못이 크다.


   그러다 지난 15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다이렉트로 바꾸고 싶었다. 마음속 불편함 때문에 미뤄왔는데, 최근 몇 년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과 재정립을 하면서 이제야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많이 늦었다.


   다이렉트는 저렴해진 비용도 좋지만, 더 이상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 없어져 더 좋다. 잘 아는 사람은 가까운 만큼 알아서 해주기도 하지만, 그만큼 질문과 요구를 하기가 불편했다.


   이제는 궁금한 것은 이해될 때까지 질문할 수 있고, 따질 것은 따질 수 있다. 이번에 보험에 가입하며 잘못 설명받은 내용은 상담사가 확인하고 다시 정정 연락을 주기도 했다. (역시 누구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알아야 한다.)


   솔직히 그에게 take를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내가 너에게 도움을 주니 언젠가는 도움을 받을 일도 있겠지 하는 그런 마음. 나는 그런 확정이율도 아닌 것에 지난 15년을 투자해온 것이다.


   마이너스 이율도 서슴없이 갈 수 있는 변동금리가 인간관계인데 말이다.


   나의 give로 끝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인간에게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품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 없이 기대하는 마음 없이 홀가분하게 내가 원하는 대로 했다.


   그를 이해는 한다.

   보험이 시작할 때가 어렵지, 일정 머릿수를 채운 후에는 나 같은 바보들만 적당히 관리해도 패시브 인컴처럼 꾸준히 매월 통장에 꽂히는데, 예전 같은 초심은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다.


   인간이니까.


   어쨌든 이제 환승을 마쳤다.

   그는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할까? 걱정이나 기대는 아니고, 재미 삼아 지켜볼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와이프와 아들이 어제 출국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