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혼인신고
"급한 일 아니면, 이따 전화할게요."
"급한 일이에요. 당신 목소리 들어야 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
능글맞은 농담에 와이프는 깔깔 웃음이 터졌다.
결혼한 지 만 14년에 가까워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이유로 이 사람과 결혼했는지 뚜렷한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 비혼주의였던 내가 만난 지 보름 만에 청혼을 했던 것을 보면 뭐가 제대로 꽂히긴 꽂혔던 것은 확실하다.
사실 그래서 결혼을 한 것이다.
그때는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해서 결혼했는데, 함께 살아보니 오히려 서로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을 한 것 같다.
지금을 기준으로 보면 그때의 우리는 사실상 모르는 사이나 다름없다.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다 안다고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꽤 자주 다퉜다.
양말을 접는 방식조차도 서로의 싸울 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각자의 가치관과 생활 습관들이 수시로 충돌했고 다툼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단 몇 개의 공통점을 가지고, 우리는 서로 너무나 잘 맞는다며 그렇게 대담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쾅 찍었던 것이다.
오랜 기간 싱글로서의 자유로운 삶이 끝나는 것에도 미련을 두었다. 와이프도 나도 그런 아쉬운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서로에게 더 날을 세웠던 것 같다.
사실상 모든 면이 다른 사람들끼리 끊임없는 갈등을 해소해나가며 그제야 서로를 알아가고 우리는 비로소 부부의 여정을 출발했다. 결혼의 완성처럼 보였던 결혼식은 단지 서막에 불과했다.
어차피 화해할 거 뭐 하러 싸웠나 싶다.
좁혀지지 않던 입장차는 어차피 좁혀지지 않았고, 갈등하고 다투고 평행선을 이루다 결국 차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단계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다투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많이 나눴다.
반복되는 대화 속에서 우리의 다툼의 원인은 양말도 아니고, 설거지 그릇의 놓는 방식도 아니고, 서로의 날카로운 말투에도 있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다툼의 근본 원인은 각자의 어두운 기억에 있었다.
그것이 고스란히 지금의 내 생각과 태도와 가치관으로 나타났던 것뿐이다. 다만 이것을 알기까지 같은 레퍼토리의 고통스러운 싸움(왜 맨날 당신은...)을 반복해야 했지만 말이다.
과거의 어떤 일이 상처로 남았고, 그것은 역린이 되어 상대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건드려지는 것뿐이었다. 내 역린의 존재를 나조차도 몰랐으니, 상대는 더더욱 내 분노나 짜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서로의 아팠던 과거를 위로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로 어렵게 전향하고 나서야 아주 서서히 다툼이 잦아들고 다툼의 강도도 약해져 갔다.
이제야 우리는 부부가 된 것만 같다.
돌아보면 연애시절 아직 어리고 예뻤던 모습에 사랑한다했던 말에는 깊이가 부족했다. 모르는 상대와 식 올리고 도장 찍고 나서야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을 보면 결혼은 대단한 도박일 수도 있겠다.
지금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와이프 덕분이다.
내가 동굴에 들어가 숨어버릴 때, 와이프는 동굴 앞에서 기다려주거나 말을 걸어 주었다.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껏 해주며(음식 냄새를 풍기며) 나를 현명하게 동굴 밖으로 끌어내 주었다.
다툴 때마다, 나는 자꾸 링 밖으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와이프 덕분에 링에서 끝까지 남아 싸우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저 감정의 분출로만 다툼을 끝내지 않을 수 있었다.
고조된 감정을 해소하고 서로 차분해지는 과정까지 마무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신뢰를 꾸준히 쌓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어린애 같은 내 행동마저 온전히 받아들여짐을 느끼며 요즘도 와이프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받고 있다.
긴 글을 쓰며 다시 다짐하게 된다.
“마누라 말 잘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