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
다이렉트 보험으로 갈아탄 지 한 달이 넘었다.
오랜 기간 고민을 많이 했던 환승이었다. 전 보험설계사와는 그가 보험일을 하기 한참 전부터 형 동생으로 지내왔던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의 일처리에 대한 불만이 반복적으로 느껴졌을 때도 나는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반복되는 일처리에 대한 무관심에 나는 두 손을 들었고 15년 만에 환승을 감행했다.
매년 12월이면 그에게서 탁상 달력 2개를 받았다.
15년 넘게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 하지만 2022년 12월에는 그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될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이미 11월에 탁상달력을 구입해 두었다.(처음 사봤는데 개당 1,350원이었다.) 여전히 그에게 보험을 가입 중인 주변인들은 모두 받았지만, 나만 못 받았다.
나도 여전히 그에게 2개의 보험이 가입되어 있다.
아마도 올해 그마저도 다이렉트로 환승당할 것 같으니 미리 나를 손절한 모양이다.
물론 나와 사실상 거래가 없으니 그럴 수 있다.
그것이 거래이고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나(고객)에 대한 무관심도 이해해 주고, 여기저기 소개해서 가입해 주고, 금전적 손해도 참아줬던 것은 모두 호구짓으로 결론이 났을 뿐이다.
심지어 보험 들면 주는 생활용품 선물도 '형, 나한테는 이런 거 안 주셔도 돼요.'라고 사양하기까지 했으니...
인간관계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신의'이고 그것이 아니면 '거래'다. '거래'가 살갑지는 않지만,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이익을 모른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렇게 내가 너에게 베풀고 하니, 언젠가는 도움을 받을 일도 있겠지 하는 그런 속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의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양보해 왔는데, 거래였다는 것을 15년 만에 손절의 형태로 확인한 것은 좀 속상하다.
오랜 기간 시간낭비를 한 것 같아 아깝지만, 어디까지나 내 실수이니 할 말이 없다. 신의를 내세워 거래하려는 자들을 늘 경계해 왔지만,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그와의 관계를 이제 분명히 알았고, 이번에 배운 것을 잘 기억할 것이다.
아니, 그동안 나와 거래를 해왔다면 '고객님'이라고 할 것이지, 왜 함부로 내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