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주고 안 받기
명절선물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총알(선물)이 날아들기 시작해서 달력을 보니 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쪽에서 쏘면, 그 상대방도 반격한다. 여기저기서 총알을 주고 받는다. 난사하는 사람들이 있고, 난사당하는 사람도 있다.
내 앞에 떨어진 총알들을 살펴본다.
그중에 다시 쏴도 될만한 것들을 추려 다른 곳에 쏜다. 내 총알이 되기 위해서는 이름표(택배용지)를 떼어내야 한다. 그리고 나를 지명하는 흔적(메모, 봉투)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조심스레 내용물 안쪽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
이런 무의미한 주고받기, 그만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주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작년 말에 서로 '안 주고 안 받기'를 하자고 미리 종전선언을 했는데, 연락이 뜸했던 지인에게 어제 선제공격을 당했다.
특히 명절선물은 상대에게 아쉬운 것이 있거나 고마운 것이 있을 때 주고, 또 받은 사람은 상대에게 감사의 인사(전화나 조금은 긴 문자)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선물을 받으면 좋다.
그런데 그런 '아쉬움과 고마움의 관계'가 아니라면 나도 선물을 보내야 한다. 반격(?)할 만한 적당한 선물을 고르는 일도 번거롭고, 금액이 높은 것을 받았다면 나도 그만큼 써야 한다.
그래서 선물을 주는, 그래서 나도 줘야 하는 것은 결국 + - 0가 될 것이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받은 선물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게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결국 - 나 다름없다.
다행히 이번에는 실물이 배송되지 않았다.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고, 내가 배송지를 입력하면 실물을 발송받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바로 '선물 거절하기'를 누르고 메시지(종전선언)를 보냈다.
정이 없어 보이지만, 나는 이게 편하고 서로에게 시간과 돈 그리고 생각의 낭비가 없어 좋다고 생각한다. 그중에는 나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지만 뭐 어쩌겠나.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