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오전에 일정이 있어 새벽에 독서를 거르고 바로 출근했다. 오전 7시30분, 사무실 근처 스타벅스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시작하는데 문자가 왔다. 약속이 급 취소가 되었다.
와이프와 통화하다가 오늘 예정에 없던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사진을 찍고 가려던 식당은 어느새 정기휴일이 매주 수요일(오늘)로 바뀌었고, 발길을 옮긴 다른 식당은 웬일로 만석이었다. 그래서 또 다른 식당으로 가던 중 눈에 띈 곳을 보고 '그냥 여기 갈까' 한마디에 경로를 틀었다.
점심식사 후 방문한 단골카페에서 와이프는 인스타에서만 알던 인친을 카페사장님의 소개로 처음 현실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지나고 보면 생각대로 된 일은 별로 없다.
내가 그 회사에 입사할 것을 예상 못했고, 그렇게 빨리 퇴사할 줄도 몰랐다. 뜬금없이 내가 사업을 시작하게 될 줄도 몰랐다. 비혼주의였던 내가 정말 우연히 스치듯 만난 여자와 결혼이라는 것을 했다.
사업 초기에 얄팍한 셈법으로 따진 예상매출은 전혀 맞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람과의 관계는 끊어졌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뜬금없이 일어났다. 누군가 지나가며 던진 말 한마디에 인생의 경로가 바뀌기도 했다. 그렇게 인생이 바뀔만한 굵직한 변수들은 알 수 없는 시기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지금의 내 모습, 내 상황.
정말이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금 더 뒤로 돌려보자면, 내가 부모형제를 만난 것도, 그 학교에 간 것도, 그 사람들을 만날 것도 내가 정한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은 방향을 알 수 없는 흐름에 내맡겨져 있는 것만 같다. (누구는 이것을 신의 영역<종교>라고 믿고, 누구는 이것을 운명<사주, 명리학>이라고 말한다.)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사는 것 같지만, 지나온 인생은 이렇게 모두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내가 뭘 했다고 하기보다 '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만 같다. 그렇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는 것은 단지 그 일의 동력과 방향에 일정 지분 참여하는 일, 그뿐인 것이다. 어떤 다른 변수가 언제 개입할지, 아니면 변수가 이미 개입했는지 그리고 몇 개의 변수가 얼마 만큼의 지분을 차지하며 개입하는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세상에 어떤 거대한 흐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서 나의 생각과 힘을 깡그리 무시할만한 거대한 힘에 언제든 떠밀리고 있음을 느낀다. 갑자기 이안류에 저만치 훅 당겨지기도 하고, 바람과 조류의 흐름이 바뀌어 엉뚱한 곳으로 어느새 밀려나 있기도 한다.
내 생각과 노력대로 간 것은 돌아보면 그저 세상의 흐름과 상황에 우연히 맞아떨어졌던 것뿐인 듯하다. '어차피 내 맘대로 되는 게 없으니 손 놓고 떠내려가자'는 것은 아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그 흐름 안에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겠다는 것이다.
내가 이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허우적 댈지(대다 끝날지), 아니면 이 흐름을 인정하고 나를 내맡길지 생각을 해보면, 결국 나는 삶이라는 바다에 나를 내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내맡긴다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문득 수영을 배우던 때가 떠올랐다.
물이 무섭다고 몸에 힘이 들어가거나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라치면 몸은 기울고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힘을 제로 수준으로 빼고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몸은 알아서 뜬다.
그냥 정말 물에 몸을 내맡기고 편안하게 눕기만 하면 된다. 물이 나를 띄워준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균형이 깨지고, 기울어지고, 가라앉는다. 겁을 먹거나, 믿지 못하는 사람은 힘으로 발버둥 친다. 그래서 수영하며(살아가며) 허우적대고 힘이 빠지고 지치게 된다.
인생의 흐름에 나를 내맡긴다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바다를 믿고, 경직된 힘을 빼고 두둥실 떠있는 것, 자연스럽게 내 몸을 인생에 맡기는 것, 그렇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