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 작은 옷방
작은 옷방에는 베란다가 붙어있다.
서랍장 몇 개를 옷방 벽에 붙이고, 방문이 열리는 공간을 제외하니 이 베란다 나가는 유리문 앞에 (바닥과 천장에 밀착시키는) 행거를 설치할 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설치형 행거대신 바퀴 달린 행거(옷가게 행거)를 이용한다.
바퀴 달린 행거는 작은 공간에 꽤 유용하다.
이것은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행거의 위치에 얽매임이 없다. 옷방 한쪽 공간을 세 개의 바퀴 달린 행거가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언제든 이동가능하고 옷방은 옷만 갈아입고 나가는 곳이므로 자리를 좀 차지하더라도 큰 상관이 없다.
이게 너무 싫다면 큰 집을 사거나 렌트하면 된다.
우리는 부동산 투자는 당분간 하지 않기로 했기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그리고 월세 재계약 불발로 인한 이사를 감행하더라도 이사 갈 집의 컨디션에 얼마든 맞춰줄 준비가 되어 있다.
행거 하나에는 나와 아들의 옷이 걸려있고, 와이프는 두 개의 행거를 사용한다. 와이프는 계절에 따라 행거의 위치를 바꾸기만 하면 되기에 옷을 꺼내 입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행거 사이의 공간으로 베란다로 나갈 수 있다. 지나갈 공간이 더 필요하면 옆으로 조금 이동시키면 된다.
자주는 아니겠지만 행거의 위치를 바꾸고 싶을 때 바닥과 천장에 밀착시키는 고정형 행거만큼 번거로운 것이 없다. 그런 번거로움(사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때문에 쉽사리 환경의 변화를 주기도 어렵다. 높이 걸려있는 옷을 꺼낼 때에는 까치발이나 도구를 이용해야 하기도 하다.
사실 수차례 비움을 해서 옷이 적다.
그래서 옷이 많이 걸리는 설치형 행거까지 필요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행거 자체만 비교하더라도 고정식보다는 훨씬 실용적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옷이 많아진다면(그럴리야 없겠지만) 하나 더 사서 세우면 그만이다.
현재는 바퀴 달린 행거가 3개가 있다.
나와 아들이 함께 쓰는 행거 1개, 와이프가 쓰는 행거 2개가 있다. 옷을 잘 사지 않고, 가끔 비우기도 하지만 어느새 행거에 옷밀도가 높아져 있었다. 거기에 행거를 위를 덮고 있는 옷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틀 전에 와이프와 옷을 한바탕 비워냈다.
수 차례의 비움에도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선택을 받지 않는 옷들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유니폼처럼 입는 옷들도 어느새 낡아서 비우기로다. 새것에 다름없는 옷들도 입지 않으면 비우기로 했다.
쓰레기통으로 향한 헌 옷을 제외하고도 큰 마트가방 네 개를 가득 채웠다. 여전히 A급에 버금가는 옷들이지만 최근 1~2년 우리 가족의 선택을 받지 못한 옷들이다.
당근에 팔면 몇만 원은 벌겠지만 가격을 흥정하는 번거로움과 직접 만나거나 문고리 거래하려고 집주소와 출입구 비번을 알려줘야 하는 사생활 노출을 이제는 피하기로 했다. 혹시나 요즘 기승을 부린다는 당근 진상을 만날까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비워낸 옷 전부를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다.
이 옷들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 쓸모를 발휘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익은 세상에 조금이나마 기부가 된다니 마음마저 흡족하다. 작게나마 기부금 소득공제 정도면 만족한다.
어쩌면 바퀴 달린 행거의 정해진 폭(120cm)이 더 이상의 욕심을 자제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이 범위를 넘지 않게만 유지하려고 한다. 옷이 늘어나면 옷걸기 힘들어진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비우라는 신호다.
요 며칠 옷방에 들어가면 뭔가 가볍고 여유로운 느낌이 들어 웃음이 배어 나온다. 와이프께서도 그러시단다. 그렇다면, 행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