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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Mar 24. 2023

돈이 안 되니까 브런치에 글을 쓴다.

가격과 가치

   낮에 재즈공연이 있어 소극장에 다녀왔다.

   평일임에도 빈자리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아무리 무손실 음원이라도, 아무리 최고급 스피커라도 이렇게 공연장 가까운 거리에서 라이브로 듣는 것을 따라올 수는 없을 것이다.


   잠시 객석에도 조명이 들어와 팸플릿을 열어보니 악기 연주자들의 이력이 화려했다. 유럽의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유명 뮤지션의 곡이나 공연에 참여한 경력도 꽤 있었다.


   잠시 생각이 샛길로 빠진다.

   저들은 한 번의 공연에 얼마를 받을지, 셋 중 어떤 악기가 더 많은 페이를 받는지, 이런 정기공연은 얼마나 잡히는지, 세션으로 참여할 때는 건바이건으로 받는지, 악기는 얼마인지, 유지보수 비용이 있다면 얼마가 드는지, 지금의 악기를 갖기까지 몇 개의 악기를 샀을지, 처음부터 좋은 것을 샀을지 아니면 단계단계를 거쳐 올라왔을지, 중고 리셀할 때 자기의 이름값이 가격방어에 도움이 되는지, 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들어갔던 비용은 얼마이며 그 비용은 이런 공연활동으로 얼마 만에 뽑아낼 수 있는 건지, 뽑아낼 필요가 있는 사람인지, 저 악기에 대한 개인레슨 수요가 있는지, 있다면 페이를 얼마나 부르는지, 이런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에이전트가 낀다면 몇 % 수수료를 떼는지...  


   모든 열거에 '돈'이 들어가 있다.

   궁금한 것이 계속 이어졌다. 그냥 순수하게 공연만 즐기면 좋겠다만, 장사꾼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간다. 늘 이렇다. 돈과 연관 짓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아니 자동이다. 새로 가는 식당이나 커피숍에서도 때로는 누굴 만나도 이 프로세스는 작동한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혀 돈이 안되기 때문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장사꾼의 이런 말이 아이러니하지만 말 그대로다. 단위시간당 수입에 비하면, 이런 글쓰기는 전혀 돈이 안된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오히려 상당한 마이너스다. 


   내 나이뿐만 아니라 사업을 17년이나 하고 있다 보니 지금 씌워져 있는 '사회적 가면' 때문에, 현실에서는 할 말, 못할 말이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럴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는 자유로운 곳이기에, 내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 볼 수 있는, 나에겐 상당히 '가치'있는 놀이터다. 안 써지는 글을 쓰기 위해 며칠에 걸쳐, 몇 시간을 들여 쓰기도 한다. 


   예전에는 돈이 안되면 무의미하다고 여겼다. 

   쓸데없는 짓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웃긴 건 어렸을 적부터 '내가 좋아하던 것'이 '일'이 되었고, '사업'이 되어 그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진작에 돈 벌려고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재미있었고, 그래서 오래 해왔고, 그것으로 신기하게 돈도 벌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 인정받으려고 쓰는 것도 아니고, 이것으로 사업과 연관 지어 수익을 내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재미도 있고, 나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이기에 글을 쓰는 것이다. (지난 1년간 Daum에 15편의 글이 게시되면서 신기한 경험들도 해보긴 했다.)


   뭔가 힘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한다.

   또 뭔가 다른 이유가 개입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는 온전히 '내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글이 안 써져서 애를 먹을 때, 뭐 하러 이런 짓을 하고 있나 현타가 올 때도 있긴 있었다. 꽤 공들여 쓴 글임에도 반응이 없기도 하고, 별생각 없이 쓴 글이 뜬금없이 터지기도 한다. 1년을 넘게 글을 써보니, 그런 것도 한때고 다 지나갔다. 


   내 삶을 생각하고 내 마음을 읽고 그것을 정리하여 글로 옮기는 나를 위한 시간임이 제일 중요하다.


   559명의 카톡친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와이프와 아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좋다. 


   돈 몇 푼 주는 광고가 없어서 좋고, 여기엔 무슨 상위노출이니 하는 그런 복잡한 기술도 없다(있나?). 그런 것들이 있다면 아마도 의식을 안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여간 돈과 관련 없어서, 나는 이곳이 좋다. 내 글이 인기가 있든 없든, 글을 쓰고 싶을 때 쓰면서 잘 놀아봐야겠다. 


   얼마 전 '인생은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아보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믿어보려고 한다.


   다음 달에는 첼로와 피아노 그리고 소프라노가 함께하는 공연이 있다. 그때는 사회자의 말에, 가수의 표정과 감정에, 그리고 악기의 소리와 화음에 더 집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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