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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Mar 03. 2022

경로당을 접수하겠다.

무소속 생존기

   몇 년 전 아들의 학교에서 운동회가 있었다. 규모가 작은 초등학교라서 학부모들도 운동회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는 그중에 학부모 달리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약간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트랙에 섰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얼마 달리지 않아 응원석에서 '와~'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달리기를 마치고 응원석으로 돌아와 보니, 와이프는 적잖이 놀란 표정이었고, '너네 아빠 엄청 빠르다'는 친구들의 말에 아들도 조금은 으쓱해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건 나였다. 달리기를 잘한다는 말을 태어나서 정말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 체육수업이 있던 날에는 저녁에 거의 매번 코피를 쏟을 정도로 체력이 약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군입대 후 신병교육대 입소식에서 두 번이나 졸도할 정도였다.




   내가 달리기를 잘하게 된 계기는 자동차를 처분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는 밤 10시가 되어야 퇴근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나의 퇴근시간과 버스차고지에서 마지막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이 같다는 것이었다. 내 사무실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장까지 약 350미터 정도 된다. 차고지에서 출발한 마지막 버스도 그 정류장까지 오는데 약 1~2분 정도 걸렸다.



   나는 매일 밤 마지막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버스도 자주 놓쳤고 정말 토할 것같이 힘들었다.


   그렇게 매일 밤을 전력질주하다가, 이듬해 아이의 학교 운동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사실 40세 전후의 아저씨들이 평소에 전력질주할 일이 뭐가 있을까. 나와 같이 달리기에 참가한 아저씨들은 당연히 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1년 넘게 미친 듯이 달렸을 뿐이었다. 따로 운동을 하는 시간을 내진 않았지만, 내 일상 속에서 내 몸은 나도 모르게 단련되어왔던 것이다. 부수적으로 살도 많이 빠지고,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현재는  가지 이유로 다시 차로 출퇴근을 하고 있어서, 예전처럼 마지막 버스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짧지만 꾸준한 운동 만으로도 건강이 좋아질  있다는 것을 느낀 후로는 지금도 여전히 달리고 있다.  


    이제는 무릎 관절을 위해 천천히 달린다. 오르막길을 완주(고작 300미터)   하고 나면 가쁜 숨을 몰아쉰다. 특히 화가 풀리지 않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달리면 스트레스 해소 효과가 정말 좋다. 운동 시간이 길고, 너무 힘들면 다음  하기 싫어지기 때문에, 조금은 아쉬울 정도로 짧고 굵게 끝낸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달린다.



   그리고 집에 올 때는 층계를 걸어 올라간다. 집이 12층, 주차장은 지하 2층 정도로, 14층 높이를 매일 2회 이상 걸어 오른다. 쉬지 않고 집까지 걸어 올라오면, 가쁜 숨을 내쉴 정도로 역시 유산소 운동 효과가 있다. 하체 근력강화는 물론이다.



   플랭크는 최근에 시작했다. 나는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코어 근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작년에 유퀴즈에 출연하신 87세 김영달 님이 플랭크를 7분이나 하신다는데서 힌트를 얻었다. 최초 1분으로 시작하여 조금씩 시간을 늘려나가고 있다. 시간은 짧지만, 운동범위가 넓어서 좋다.


   물론 이런 생활 속 사소한 운동은 쉽게 흐지부지 되기 쉬워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냉정함이 필요하다. 급해도, 귀찮아도, 힘들어도, 날씨가 안 좋아도, 모른척하고 해 보면 웬만한 일에 타협하지 않게 된다.




   학교 다닐 때는 기가 세거나 힘이 센 녀석들이 학급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유약했던 나는 한 번도 그 녀석들처럼 행동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주변인들을 보면서, 결국 주먹의 매운맛보다는 하체와 코어 근력이 더 중요함을 느낀다.


   나의 인생 목표는 '죽는 날까지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화장실에 내 힘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 매일 달렸던 것에서 배운 것처럼, 돈이 부족해도 나이가 들어도 시간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운동이 너무 힘들면 그만두기 쉽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열심히는 하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 다가올 나의 건강한 노년생활을 위해 이 최소한의 "생존 운동" 루틴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아들이 나에게 묻는다.

   “아빠는 왜 운동을 맨날 해?”

   “응, 아빠 늙어서 동네 경로당 접수하려고.”


   그렇다. 나는 맑은 정신과 탄탄한 하체와 코어를 바탕으로 아흔이 넘어 경로당을 접수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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