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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Jul 26. 2023

방학 매뉴얼

느린 조깅, 존투 트레이닝

   지난주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오니 와이프 눈에 총기가 사라져 있었다.


   방학이 시작된 것이다.

   아들의 방학은 곧 와이프의 개학을 의미한다. 와이프와 나 같은 고양잇과 유형의 인간들은 자기만의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무척 힘들어한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되면, '방학 매뉴얼'을 가동한다.


   일단 학기 중 식사시간(기상시간)을 지킨다.

   아침메뉴도 그대로 샐러드, 블루베리, 사과당근주스(벤나주스), 그릭요거트, 달걀 반숙, 그리고 구운 치아바타로 언제나 동일하다.


Life is an egg.


   아침 식사를 마치면 설거지를 한다.

   냉동실에 얼려둔 잡곡밥도 거의 다 먹어서 잡곡도 씻어 놓는다. 쌀 한 컵, 현미와 귀리 세 컵, 렌틸콩 두 줌, 그리고 완두콩 한 줌을 스텐솥에 담고 촥촥 씻어 냉수를 담아 냉장고에 불려둔다.



   와이프는 쇠질하러 헬스클럽에 간다.

  아들은 그대로 두면 잘 때 입던 옷 그대로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 않는 진성 집돌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을 데리고 아파트 주변을 달리러 나간다.



행복한 천재들은
마음을 다잡기 위한 결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로 간다.
그들의 행복 습관이 공간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학기 중에는 아이가 등굣길에 자동으로 햇빛을 쬐며 걷지만, 방학중에는 아침에 일부러 나가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햇빛에 일정하게 노출되기 어려워 생활리듬이 깨지기 쉽다.


   지난 겨울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쳐서 앞이 잘 보이지 않던 날에도 데리고 나갔더니, 비가 잦고 더운 요즘 날씨라도 아이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역시 생각의 한계를 경험으로 확장해 놓으면 더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


   요즘은 느리게 달리기(존투 트레이닝)를 한다. 체력을 기르는데 이것만 한 게 없단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 말이다. 약간 응용해서 약 2km 코스를 느리게 달리다 걷다를 반복하는 인터벌 트레이닝 패턴으로 달린다.


   오르막은 느리게 달리고, 내리막은 걷는다.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나는 동기부여 강사가 된다. 그렇게 달리고 걸으며 땀이 막 날 때, 덥고 짜증 나고 힘들기만 한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힘든 기색이 보일 때마다 '너 지금 겁나 멋있어'라고 계속 가스라이팅 한다.


   효과가 있었는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스스로 집까지 걸어 올라가겠단다. 12층인데. ㅋㅋㅋ


   집에 도착하면 목과 등에 땀이 줄줄 흐른다.

   그 기분 그대로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샤워를 하고 나면 아들이 입에는 미소가 번진다. 그렇게 운동을 마치고 생동감 있는 심장박동을 즐기게 한다. 이런 경험이 아들에게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아침 운동 덕분인지 아들과 나는 밤 10시만 넘으면 기절하듯 꿀잠에 든다.


   아들이 씻는 동안 나는 풀업(턱걸이)과 스쿼트를 한다.

   그리고 와이프가 곧 돌아오므로 점심 준비를 시작한다. 오늘은 고기와 야채를 간단히 볶아 놓고, 나도 씻는다. 와이프가 돌아오면 같이 점심을 먹고, 나는 아들을 데리고 출근을 한다. 아들은 사무실 정리와 간단한 청소를 하고, 빈자리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전지 + 양파 + 청양고추

   학기 중만큼 와이프에게 온전히 혼자의 시간이 확보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가끔 잠시 동안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이 쉴 여유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아들이 드럼수업이 있어서 오전 운동까지만 같이 하고 나는 일찍 나왔다. 출근길 중간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나도 잠시 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얼마만의 글 쓰는 시간인가!


   앞으로 2시간 정도 더 자유시간이 있다.

   꿀이다 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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