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인가?
스타벅스에 갔는데 앞에 여자의 주문이 오래 걸렸다. 자리로 돌아가 사이렌오더로 주문할까 하다가, 금방 끝나겠지 싶어 기다리는데 2~3분이 지나도록 도통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대충 오가는 내용은 자신의 할인 혜택이 왜 여기 시스템에 반영이 되어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직원은 자신이 시스템을 담당하지 않아 잘 모르겠고, 혜택을 제공한다는 그 회사 콜센터로 문의해 보라는 답을 했다. 그 여자는 왜 시스템에 반영이 안 되느냐 또 묻고, 직원은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같은 대화가 3번 정도 반복되더니 여자는 급기야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결국 '여기 매니저 어디 있냐'를 시전 했고, 그 직원이 매니저임을 확인한 그 여자는 급발진을 하더니 매니저의 이름을 물었다. 어떻게든 너에게 불이익을 줄 테니 두고 보자는 말투였다.
그 여자가 나간 뒤, 나는 계산대에 가까이 가면서 그 직원의 덜덜 떨리고 있는 손을 보았다.
"힘내세요."
조용히 말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 직원은 답을 했다.
매니저는 기껏해야 20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그 여자는 50대쯤으로 딸 같은 아이에게 그런 분노를 아니 분뇨를 싸지르고 떠났다. 그놈의 할인인지 혜택인지가 뭐라고 그렇게 까지 GR을 할 거까지야 있을까 싶었다. 내가 봐도 그 회사에 전화 걸어서 해결할 일인 거 같은데 말이다.
그 여자는 문제를 해결하길 원한 걸까?
아니면 자기의 분노를 받아줄(받아낼 수밖에 없는) 사람을 찾은 걸까?
갑질이다. 갑질.
가까운 지인은 먹던 빵과 몇 달을 쓴 물건도 전액환불을 받아내는 강력한 컴플레인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다. 단지 맛이 없어서, 물건을 더 이상 안 써서 환불을 시도한다. 그 부부는 환불이 안 되는 게 이상한 거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것도 결국엔 사람 괴롭혀서 뺏어오는 것일 텐데 말이다.
살다 보면 이렇게 타인을 괴롭히는데 거리낌 없는 사람들이 있다.
멀게는 공중도덕과 법을 지키지 않는 '모르는 사람들'이 있고, 가깝게는 상대를 불편하는 '주변인들'이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피하면 그만이지만, 한동안 옷깃을 스쳐야 하는 가까운 사람들이 그렇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침묵의 습성'이 있다.
자신이 괴롭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갈등상황을 일단 피하기 위해 침묵을 택하는 습성이다.
그래서 빌런들은 돌다리 확인하듯 사람을 툭툭 건드려 본다. 그렇게 상대에게 '침묵'의 습성이 있는 것을 확인하면, 그들은 이제 선을 넘는다. 한 번 두 번 슬쩍 넘어보기도 하고, 한 번에 과감하게 훅 치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웬만한 불편함에도 사람들은 보통 '침묵'할 거란 것을 알기 때문에, 첫 단계 이후에는 그들은 멧돼지가 밭을 헤집듯 서슴없이 울타리를 넘나 든다.
그들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침묵'의 냄새를 잘 맡았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어디가 그 상대의 벼랑 끝인지도 잘 알고 괴롭힌다. 무례하게 반말을 하거나, 과도한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하거나, 주변 사람의 시선을 이용해 개인을 구석으로 몰아가는데도 능하다.
그들의 인생공식이 그렇다.
부끄러움도 없고, 미안함도 없다. 게다가 언제든 진흙탕 싸움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들과 싸워 이기더라도 나도 상처 투성이, 진흙 투성이가 되기 때문에, 그들이 불편하고, 피하게 되고, 마주하면 두려워지기도 한다.
상대의 이런 짓거리들은 충치와 같아서 초장에 긁어내지 않으면 점점 더 깊숙이 파고 들어온다는 것을 느지막이 깨달았다.
이제는 멧돼지가 울타리를 건드리면 경고음을 날린다.
멧돼지들에게는 들어오지 말아야 할 이유를 구구절절 말해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구차한 이유를 둘러대지 않고 그냥 “내가 싫기 때문에 싫다”고 말하는 (콩닥거리는 심장을 달래는) 연습을 한다. 이런 직설적인 반응이 제일 효과가 좋았다.
멧돼지에게는 보상받기 어렵고,
충치는 참고 기다릴수록 더 깊이 파고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