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Jun 28. 2023

나를 때린 사장님 덕분에

나를 때린 사장님 때문에

   비가 오던 일요일 저녁이었다.

   집에서 TV를 보며 쉬고 있는데 갑자기 뜬금없는 회사 사장의 호출이 있었다. 삼성동 i호텔까지 30분 내로 오란다. 연락을 해보니 다른 직원들도 호출을 받은 모양이었다. 집은 방화인데 비 오는 주말에 삼성동까지 30분? 나는 서둘러 정장으로 갈아입고, 택시를 잡아타고 i호텔로 향했다.


   호텔 로비에 사장이 서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가까이 다가가 사장에게 인사를 했더니 '늦었다'며 다짜고짜 거친 욕을 하며 내 뺨을 때리고, 구둣발로 내 정강이를 몇 차례 걷어찼다. 가까이 다가간 순간 이미 술로 인해 돌아있던 그의 눈동자가 지금도 선하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그대로 얻어맞았다. 마침 도착한 오00 과장이 사장을 뜯어말렸다.


   벌써 18년 전이다.

   내가 27살 신입사원이었던 시절. 나의 첫 직장생활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결국 회사를 나오게 되었고, 꽤 우울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우울함은 무기력함을 동반했고, 거래처 회사의 스카우트마저 끝내 무산되며 결국 나는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사장은 성격이 괴팍했다.

   게다가 주사도 심해서 회식이나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에피소드가 생길 정도였다.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한 그는, 고졸 학력과 매우 짧은 영어로도 특유의 집념과 실행력으로 규모 있는 무역회사를 일궈낸 사람이었다. 그런 부분에서 참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자부심은 '안하무인'이라는 부작용을 낳은 것 같았다.


   그 후로 직원의 대부분이 떠났다.

   사장의 심복이었던 장00 부장은 사장과의 소송이 있었는지 나에게 증언을 부탁을 했고, 회사는 얼마뒤 사라졌다. 그래도 직원들끼리는 좋았던 기억이 있어서 그때가 그립기도 하고, 또 쓰리기도 하다. (취업에 성공했다고 기뻐했던 그 순간에는 절대 몰랐을 결말이었다.)


   짧은 회사생활은 임팩트가 좀 있었다.

   '사람과 사회의 이면'을 직접 느꼈고, 그때의 나는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벅찼다. 그로 인해 한동안 나의 시야는 어둡고 탁해졌다. 우울함과 무력감 겪으며 거의 1년을 어리석고 무기력하게 보냈다.


   예전에는 그 사장을 욕하고 저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사장이 되고, 17년째 사업을 이어오며 '사람과 사회의 이면'을 배우고 나서야 나는 그가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행동을 옹호한다는 것은 아니다. 돈이 벌리면서 생기는 마음(오만함)이 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그때 사장의 나이보다 많다.

   사업을 시작하고 해를 거듭하며 나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 어느새 바뀌었다. 그 당시 사장이 평소에 하던 말, 하던 행동들이 조금씩 해석이 되었다. 그는 성공에서 피어오르는 어긋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다.


   내 두 정강이의 상흔은 희미하게 남아있다.

   마음의 상흔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때의 사건 때문에 사람을 잘 믿지 않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반면에 그때의 사건 덕분에 나는 어린 나이에 일찍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감사하게도 그때보다 훨씬 윤택한 삶을 살고 있다.


   그때 내가 10초만 늦게 도착했다면 내 인생은 또 어떻게 되었을까? 하하...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인생이다.


작가의 이전글 후회를 상징하는 전설의 새, 껄무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