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때녀
소금은 짜다.
설탕은 달고, 마늘은 아리게 맵다. 고추는 그냥 맵다. 간장은 혀가 오므라지도록 짜다. 참치액은 비리고, 치킨스톡은 라면 스프맛 같기도 하다. 양파는 매운 듯 달다. 고춧가루는 매운 건 둘째치고 조심스레 맛을 보다 호흡 조절에 실패하면 기침이 나오며 뿜는다.
무에서는 매운맛이 난다.
그런데 국이든 조림이든, 끓이면 시원한 맛이 난다. 감자는 익히기 전에는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익히면 식감이 좋다. 생선을 물에 씻으며 손질했더니 손에서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냉동 전갱이라 이건 맛을 보지 못하지만 그대로 먹었다면 배탈이 날 것이다. 맛도 물론 없을 테고.
엊그제는 전갱이 조림을 했다.
무와 감자의 껍질을 벗겨 두툼하게 썰어 냄비에 깔고, 그 위에 전갱이를 얹었다. 앞에 언급된 양념들을 매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배합비율, 즉 눈대중ㅋㅋ으로 대강 조합해 물과 함께 냄비에 붓는다. 그리고 한참 바글바글 끓여 국물을 졸인다.
무와 감자에 양념이 배어 맛이 들었다.
전갱이, 이름만 들었지 사실 처음 먹어봤다. 지난번에 갈치조림은 다소 망한 눈치였는데, 이 전갱이조림은 와이프도 아들도 모두 맛있단다. 내가 먹어도 그럴싸했다. ㅋㅋ 잘 모르겠어서 그냥 대충 레시피 따라 했는데 얻어걸렸다.
조리과정을 돌아보며 신기한 점이 떠올랐다.
들어간 재료들 각각은 '맛보기'는 가능하나 일정량 이상 '먹기'는 좀 어렵다는 것이다. 너무 달고, 너무 짜고, 너무 맵고, 어떤 건 맛보기 힘들 정도다. 그런데 모두 잘 조합하여 조리하면 꽤 맛있어진다.
정말 치열하게들 뛴다.
골때녀를 보는데 연장전까지 가서 4:3으로 결판이 났다. 첫 골의 환희, 동점골의 아쉬움, 역전의 조바심, 동점의 신남, 재역전의 패배감, 종료직전의 버저비터 그리고 연장 골든골. 승리와 패배. 환희와 눈물. 짜릿함과 후회.
경기 한 그릇에 달고 짜고 맵고 쓴맛들이 계속 이어진다.
다양한 맛들이 섞이며 그녀들의 축구 한 그릇은 더욱 다채로워진다. 어떨 땐 이기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지기도 한다. 맨날 이기기만 한다면(단것 만 먹는다면) 축구가 맛있을까? 다양한 맛의 우여곡절이 축구의 깊은 맛을 만든다.
쓰디쓴 패배를 맛보았거나, 쓰라린 토너먼트 탈락이라는 결과를 맞을지라도 탈락과 패배의 눈물은 마르고, 또 언젠가는 새로운 승리의 맛을 섞는다. 그렇게 재료의 맛이 우러나고 깊어진다. 진짜 맛있는 축구가 된다.
우리 인생도 달기만 하다고 좋을까?
참 다행인 건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한 가지 맛만 계속 주지 않는다. 달달 하다가도 쓰고, 호되게 맵기도 하다가도 또 입안이 짭짤해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쓴맛을 또 어떤 날은 단맛을 더 넣는다.
전갱이 조림을 하며 간장 넣고, 맛술 넣고, 마늘 넣고 하는 것처럼 나도 하루하루 내 삶에 간장도 넣고, 소금도 뿌리고, 후추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순간의 맛, 하루의 맛은 너무 짜거나 너무 달지는 몰라도 시간이 흘러 맛들이 잘 배합이 되어 푹 익었을 때는 우리는 한결 더 편안해진다.
모든 사물과 사건, 만남과 상황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배움이 필요하다.
- 기적수업 -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요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순간을 하루를 그리고 한동안은 불편하고 괴로울 수 있겠지만 괜찮을 거다. 또 달달한 설탕을 넣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단맛이 최고가 아니다. 어떤 요리는 쌉싸래한 맛이 일품이고, 또 누구의 요리는 얼큰한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요리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 매일매일 양념과 재료를 넣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논하는 어떤 책에서는 삶에서 다가오는 모든 일들을 '분별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라고 하는가 보다.
그래, 주는 대로 넣자.
나에게 오늘을 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맛이 깊어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