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야구
월요일은 최강야구 하는 날이다.
다시는 그라운드에서 못 볼 것 같던 은퇴한 선수들이 야구를 다시 하는 모습 만으로도 신기했지만, 아무래도 프로일 때 보다 넓어진 시야와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야구를 해서 그런지 지금 하는 그들의 야구가 훨씬 더 재미있다.
"은퇴할 때가 되니 축구가 보인다."
어느 축구선수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제 축구가 뭔지 보이는데 몸은 은퇴할 때가 되어가 너무 아쉽다고 한다. 아마 최강야구에 출연하는 선수들도 그런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그들은 이제 뭔지 알 것 같은 야구를 다시 하고 있을 것이다. 예전 같은 칼 같은 제구나 구속, 타격 감각과 힘은 줄었겠지만, 그들의 야구 지능과 센스 그리고 승부욕은 여전해 보였다. 그리고 경기를 하면 할수록 예전의 그것을 찾아가는 듯하다.
나는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빨리빨리 안 던지고 밍기적 대는 것도 싫고, 투수가 공 하나하나 던질 때마다 타자가 타석에서 장갑 풀었다 닫고, 옷을 잡아당기고, 방망이를 몇 번 돌리는 등의 길고 반복적인 루틴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달에 걸쳐 최강야구를 보면서 야구의 숨은 재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과정 속에서 선수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의 이면을 볼 수 있게 되어 선수를 더 알게 되고 경기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그랬다.
야구는 인생과 비슷하다고. 그런데 맞는 말 같다.
실수 하나에, 타격 하나에, 공 하나에 경기 흐름이 바뀌기도 하고, 일희一喜가 계속 희喜도 아니고 일비一悲가 계속 비悲도 아니다. 기세 좋게 흘러가기도 하고, 다 된밥에 재 뿌리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일로 분위기가 전환되기도 한다.
야구도 인생처럼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인생을 닮은 야구를 보며 인생의 힌트도 얻는다.
야구를 보다 보면 자신의 공을 던지지 않은 투수와 자기 스윙을 가져가지 않는 타자들은 모두 뒤돌아 후회를 한다. 실패의 두려움이나 성공의 욕심이 작동해 준비했던 것을 해보지 못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맞는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자기 것을 하지 못한 것에서 더 큰 후회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타자에게 얻어맞더라도 내 공을 던지는 투수, 투수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기 스윙을 하는 타자와 같이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야 후회가 없고, 실패하더라도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보일 것 같다.
선성권 선수의 등판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일반인이다. 20대라는 늦은(?) 나이에 프로가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공을 던지기보다 돈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는 다른 일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마운드에서 뿌리는 공이 서툴지만 적어도 자기 인생의 마운드에서 자기 공을 던지는 용기있는 사람이지 않나 싶다.
이대호 선수는 빠르지 않다.
그렇지만 타격 능력, 특히 장타력으로 그 단점을 넘어서고, 스타선수답게 찬스가 왔을 때 집중력이 놀랍다. 그의 실력도 물론이지만, 그 바탕에는 어려움 속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만 남겨두는 듯한 그 특유의 멘탈이 작동하는 것 같다. 복잡한 마음에 빠지지 않고 핵심만을 대하는 태도가 멋있다. 괜히 조선의 4번 타자가 아니다.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전형적인 예다.
생각나는 다른 예도 있다. 우리나라 축구선수들은 대개 양발을 잘 쓴다는데, 세계적인 수준의 유럽 선수들은 한 발을 '엄청나게' 잘 쓴다고 한다. 우사인 볼트도 척추가 휘어있어 다리의 균형이 맞지 않는단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불균형으로 인해 한 발이 바닥을 망치를 내리치듯 달리는 주법 덕분에 그는 말 그대로 우사인 볼트가 되었다.
부족한 점만 보완하느라 애쓴다면 그저 그런 선수들이 되었을 것 같다. 그래서 삶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내 장점과 상황을 긍정적으로 극대화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내 장점을 찾고, 내 적성을 찾아 집중하는 것. 나도 그렇고, 와이프도 그리고 우리 아들에게 있는 장점과 적성을 찾아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선수라도 기세가 올랐을 때 모습은 전혀 다르다.
볼은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에 촥촥 꽂히고, 기세 좋은 타자의 눈에는 공이 더 커보이고 배트는 아주 부드럽게 돌아간다. 그런데 또 같은 선수라도 기세가 꺾이면 공은 빠지고 배트는 유인구를 따라 나가 버린다.
이래서 사람은 기세가 참 중요하다.
가지고 있는 실력을 한층 배가시키는 것이 이 기세다. 그런 기세를 높게 가져가는 선수들이 레전드 선수가 되는 것 같다. 나도 이 "혈중 기세 농도(?)"를 항상 높게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나도 인생을 은퇴할 무렵 인생이 뭔지 보일까?
그렇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 이제 인생이 뭔지 알 것 같은데 내 인생에서 퇴장할 때가 되었다면 얼마나 아쉬울까? 그래서 나는 항상 주변에서 삶의 힌트를 얻어 지금의 내 삶에 바로 접목하기를 늘 추구하고 있다.
100점짜리 인생은 없고, 10할 타자, 100전 100승의 노히트노런 투수는 세상에 없다.
내 인생에서 나는 내 공을 던졌는지, 내 스윙을 가져갔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걱정일랑 귤껍질 까듯 대수롭지 않게 떼어내는 내가 되고 싶다.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