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mm
사용 중인 에어팟 맥스에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다.
노이즈 캔슬링은 듣기 싫은 외부 소음의 반대의 주파수를 흘려서 듣고 싶지 않은 노이즈를 상쇄하는(막아주는) 기능이다. 그래서 듣고 싶은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들리되 들리지 않는 고요함.
노이즈 캔슬링을 한번 써본다면 이 기능이 없는 이어폰을 쓰기 힘들 정도다. 이어폰 하나에 30만 원을 훌쩍 넘기는데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웬만한 중학생 아이들도 끼고 다닐 정도로 점점 대중화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왜 개소리를 차단해 주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없는 걸까?
한동안 주변인들을 만날 때 좀 스트레스가 있었다.
"머리가 왜 그러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 한두 번이야 그저 그랬는데, 자꾸 듣다 보니 좀 지치고 짜증이 올라왔다. 남의 사생활과 자유에 함부로 부정적인 말로 지적하는 자체가 선을 넘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고, '저 사람 머리 좀 봐'라는 속삭임은 지금도 내 귀에는 잘 들리지만 그런 건 괜찮다. 정말 괜찮다. 오히려 카페나 식당에 가면 사장들이 나를 잘 기억해 줘서 인사를 쉽게 주고받고, 내가 가끔 요구하는 서비스를 미리 알고 건네주기도 한다.
내 머리를 칭찬했던 사람은 와이프와 아들을 제외하고 딱 셋 뿐이다.
미국 살다 온 사촌 누나는 나를 보자마자 잘 어울린다 했고, 의사 선배는 몇 년 뒤 은퇴하고 자기도 그렇게 깎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는 갤러리 관장님은 자유롭고 멋지다며 내가 마실 커피 한잔을 결제하고 가셨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남의 사생활에는 일단 침묵을 지키는 것이 선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그 선을 넘는 예의 없는 것들은 여전히 그 요망한 입을 연다.
'머리를 왜 그렇게 했어?'
'너는 머리가 왜 그러냐?'는 뭐 기본이다.
그런데 어제는 다소 훅 들어와서 많이 당황했다.
"00님, 머리가 왜 그래요?"
"왜 남의 사생활에 부정적으로 말을 하지?"
"아들이 뭐라 안 해요? 아들은 분명 불편하고 싫어할 텐데? 아, 진짜 싫겠다."
"......."
20대 젊은애가 사고가 저리 닫혀있다니 충격이었다.
그녀의 확신에 찬 표정에 아마 나는 무슨 말을 했어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단단하게 막혀있는 벽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말이 실례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까? 좀 알려주면 깨달을까? 깨닫게 해 줄 필요는 있었을까?
나에게 저런 말들을 했던 사람들을 돌아본다.
나와의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저런 말들을 했을까? (사실 그들 모두 그리 깊은 친분들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저런 개소리를 하는 거다.
법륜스님이 이런 말을 했다.
"성인군자도 아닌 사람이 성인군자 행세할라니 얼마나 힘드나? 자기 수준을 받아들이세요."
어제오늘 곰곰이 생각했다.
나도 성인군자가 아닌데 성인군자 행세할라니 참 힘들다. 그들이 어리석어서 저렇다고 이해는 해도 속된 말로 나는 '빡이 치는' 것이 지금의 내 수준일 것이다. 인정한다.
나는 내 수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지금껏 그래왔듯 사람들에게 예의를 잘 지키고 다정하게 대할 것이다.
하지만 노이즈 아니 개소리는 단호히 캔슬링 하겠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예의로 소통해 봐야'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오늘부터는 그 나라 사람에게 현지 언어로 답해주겠다.
아, 이걸 10,043세에 알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