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세상 모든 사람이 날아다닌다면 어떨까?
모두 죽지 않거나, 어린애들도 차 한 대 정도는 한 손으로 거뜬히 들 수 있다면 그게 초능력일까?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없는 능력이면 충분히 초능력이라 할 수 있다.
초능력이 있다면 좋겠단 생각은 지금도 한다.
그렇다고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거나, 엄청난 힘일 필요는 없다. 나는 현실 물을 먹은 아재이기 때문에 그런 상상은 길어야 5초 내에 멈춘다. 그저 현실에서는 호랑이보다 빠르지 않아도 같이 쫓기는 사람보다 빠른 정도면 초능력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왜 초능력이 필요하다고 느낄까?
어렸을 적에는 순전히 꿈과 상상이었지만, 지금은 사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아본 결과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과 세상의 우연은 이제 받아들이겠지만, 인간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수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심해 깊숙한 곳과 태양계 밖도 탐험하는 이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여전히 해법을 찾고 있는 것은 이 '인간'을 대하는 일이다. 그 대단한 현자들도 인간을 힘들어했고 많은 말들을 남길 정도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초능력은 하늘을 나는 것도, 죽지 않는 것도, 괴력도 아닌 뭐랄까... 인간들 속에서 인생을 좀 쉽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능력이다.
그래서 그런 초능력을 얻을 방법을 생각해 봤다.
어떤 분야에서 1등을 하는 게 어렵다면 2개 3개의 분야에서 2등, 3등을 하면 된다고 한다. 상위 1% 정도면 1등이라 가정하고, 2등, 3등보다 좀 더 아래로 내려 상위 10% 짜리 2개의 능력을 가진다고 해보자. 10%라는 백분율을 소수로 변환하면 0.1 이므로
0.1 X 0.1 = 0.01
즉, 상위 1%가 될 수 있다.
이 정도면 초능력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극히 현실적인 초능력자가 되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특히 갖추기 어려운 것 3가지에서 상위 10%를 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0.1 X 0.1 X 0.1 = 0.001 이므로 백분율로 환산해 보면, 나는 심지어 상위 0.1%가 될 수 도 있다.
1. 근육질 몸
일단 겉모습에서 초능력자 티가 나야 한다.
겉모습만으로도 만만하지 않다는 인상을 풍겨야 한다. 얼굴이 잘생기거나 예쁘면 이성에게는 호감을 살 수 있으나 동성에게는 시기와 질투를 산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몸은 이성에게는 호감을, 동성에게는 어느 정도 '위압감'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첫 번째 상위 10%는 몸이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밖에서 오늘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 모두를 모수로 정해 그중 상위 10% 안에 들 정도면 될 것 같다. (범죄도시3에 나오는 초롱이처럼 살을 찌우고 문신을 많이 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부작용도 있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다.)
한때 몸을 만들어 본 경험으로 미뤄 보아 크게 돈이 들지 않는 방법도 있지만, 빠르게 상위 10% 안에 들기 위해서는 대략 1년에 1천만 원 정도 투자에 노력을 더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초능력자가 된다는데 이 정도는 비교적 싸다고 할 수 있다.
2. 정치인 멘탈
학창 시절에야 주먹과 힘으로 싸운다지만 요즘 세상에 주먹 한번 잘못 놀렸다가는 인생 꼬인다. 정당방위가 인정받기 어려운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더더욱 힘을 쓰면 곤란해진다. 그래서 현실 싸움의 최고봉인 정치인을 닮을 필요가 있다.
사실 이건 정말 갖기 어렵다.
자신의 존재감(인지도, 지지율)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선량한 정치인, 선한 의도를 가진 정치인도 있겠지만 이 '정치인 멘탈'을 갖추지 못하면, 재선은 물론이고 현 임기 동안 정상적인(?) 정치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단 프레이밍에 능해야 한다.
팩트도 정치싸움으로, 과학도 정치논리로, 역사도 정치적 해석으로 '싸움 판'을 바꾼다. 같은 사실과 말도 이상하게 꼬아내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얼굴에 철판을 깐다. 주장의 근거는 늘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이 원해서라고 잡아떼기만 하면 된다.
정치인 멘탈을 갖추면, 웬만한 말에 상처를 받지 않고 비난도 서슴없이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정말 대단한 건 그렇게 공개적으로 욕하고 비난해도, 서로 만나면 웃고 악수하며 환담을 나눌 수도 있고 입장이 바뀌면 세상 다정한 눈으로 서로를 감싼다. 심지어 공개석상에서 뽀뽀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 정치인들을 볼 때마다 프로레슬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리고, 던지고, 비난하고, 욕하는데 저렇게 안 죽는 거 보면 아마도 프로레슬링처럼 분명 뒤에서 미리 '합을 맞추는' 것 같다.)
못할 게 없는 초능력자들이다.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하염없이 울기도 한다. 그리고 대개 장년, 노년층임에도 불구하고 선거철만 되면 나이를 뛰어넘는 기세와 강철 체력을 자랑한다.
지은 죄가 있어도 끝까지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죄가 법정에서 밝혀지면 자기를 판단한 사법부가 부패했다고 할 정도다.
이런 멘탈을 가진다면, 얼마나 세상 살기가 편할까?
이건 분명 초능력이다.
존경하긴 쉽지 않지만, 보고 배울 능력이 많다.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능력이다. 어쩌면 연예인 외모가 없어도 이것만 있어도 될 것 같다. 아, 법조계 출신들이 많으니 로스쿨에 진학하면 유리하다.
3. 수행자의 삶
돈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돈에 눈을 뜨고 돈을 빨아들이는 것도 능력일 수 있겠지만, 적게 가진 것으로도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더 쉽지 않은 일이다.
돈이 많을수록 좋긴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선제적인 조건이 있다. '뱃속이 편하냐'이다.
천만 원 벌고 백만 원 쓰는 사람하고, 1억 벌고 9천 쓰는 사람하고 누가 더 뱃속 편할까? 나는 꼭 많이 번다고 꼭 뱃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욕망의 열차에 한번 올라타면 사고가 나거나 운전사가(내가) 아파야 멈추기 때문이다.
돈을 잘 버는 것도 능력이지만, 소유욕과 소비욕구에 따라 얼마든지 돈 버는 능력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역으로 적은 것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능력, 즉 욕망을 제어하는 능력이 초능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생활 규모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를 벌든 겁날 것 없이 걱정할 것 없이 뱃속 편하게 살 수 있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유리잔은 깨지기가 쉽고 깨진 유리잔을 다시 원상태로 돌리기는 극히 어렵다. 돈도 그렇다. 쓰기가 쉽지 모으기는 어렵다. 써재끼는 거 순식간이다. 그래서 안 깨지도록, 깨져 흩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어렵다.
운동해서 건장하고 건강한 몸을 갖고, 단단한 정치인 멘탈을 가졌는데, 돈 걱정 없이 뱃속 편하게 살 수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사람인가?
또 이런 사람이 주변에 있나?
찾아보기 쉽지 않다.
실현가능한 초능력자가 되는 법을 생각해 봤다.
잘하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아님 말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