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형
평양냉면은 맛을 설명하기 힘들다.
맛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슴슴하다'는 흔히 들어본 말 밖에 형용할 말이 없다. 맛을 설명할 순 없지만 이 평양냉면은 먹을 땐 몰라도 늦은 저녁에 불현듯 생각나 또 먹고 싶어지는 그런 맛이다.
단순함이 주는 매력이 있다.
화려함과 복잡함은 눈길을 사로잡고 흥미를 끌기에 좋지만, 나는 쉽게 질리고 다른 변화를 찾게 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이건 물건을 소유함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소유한 대부분의 물건은 기본형에 가깝다.
전자레인지도 손으로 돌려 '땡'하는 완전 기본형 모델이다. 한 5만 원 줬던가? 정수기도 몇 년 전에 냉온기능이 추가된 것으로 새로 렌탈을 해서 그렇지 그 전에는 제일 저렴한 정수기능만 있던 기본형이었다. 아들이 게임 모니터로 주로 활용하는 TV는 저렴한 중소기업 제품이다. 그리고 나는 카시오 전자시계를 아들은 수능시계를 찬다.
내 침대는 스프링이 없는 7cm 두께의 매트리스를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철제 프레임 위에 얹었다. 세탁기와 의류건조기는 제일 싼 기본형이다. 옷걸이는 옷가게에서 쓸법한 바퀴 달린 행거다. 냉장고는 뭐 말할 것도 없다. 300리터다. 전기밥솥대신 진짜 솥으로 밥을 한다.
자동차는 조금 의외일 수 있다.
안전이라는 타협할 수 없는 이유로 우리 집에는 제네시스가 2대다. 그렇지만 2대 모두 기본형에 사륜구동만 추가되어 있다. (요즘 점점 운전하기가 싫어서 테슬라로 변경할 생각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지만 나와 와이프는 편리함보다는 안전과 편안함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편이다.
편의사항, 옵션, 다양한 기능은 좋다.
문제는 그런 것들에 한번 익숙해지면 그게 기본값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보수적으로 편리함을 누리는 편을 선택한다.
최근에 우리 집 정수기 냉수기능이 고장 난 적이 있는데 한동안 불편했다. 와이프는 '아, 이것도 그새 적응되었다고 냉수 안되니 불편하다'라고 말했다. 냉수를 마셔야 하루 한잔이고, 없어도 잘 살던 우리인데 말이다.
지금도 사실 전화와 문자만 되는 폴더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업무상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 그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아반떼 사러 갔다가 그랜저 계약하고 나온다고 한다.
필요한 아니 필요할 것 같은 옵션을 추가하다 보면 소나타로 시선이 옮겨지고, 또 포기할 수 없는(?) 옵션을 추가하다 결국 그랜저로 가는 거다.
단지 음식을 데울 전자레인지가 필요하다.
옷을 걸어둘 옷걸이가 필요하다. 음식을 보관할 냉장고가 필요하다. 연락할 전화기가 필요하고, 옷을 말려줄 건조기가 필요하다. '그 기능'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다.
물론 제네시스에 4륜구동을 추가한 것처럼 그 안에서도 자기에게 가치 있는 옵션만 추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예전에 컬투쇼에 방청 갔다가 받은 컵이 있다.
아마도 7~8년은 된 것 같다. 던킨 사은품 컵은 더 오래되었다. 이 컵으로 매일 물도 마시고, 매일 아침 이 컵에 커피를 담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와이프에게도 예쁜 컵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가끔 와이프는 컬투쇼 컵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이씨, 이 컵은 깨지지도 않어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