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변속기
수동변속기 차를 다시 운전하고 싶다. 배기량 2000cc 이상의 자연흡기 가솔린 또는 LPG 연료를 사용하는 해치백이나 왜건이면 더 좋겠다. 국산차 중에 저 조건을 충족하는 차가 있다면 아마 당장 샀을 것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 3가지를 대보세요'라는 질문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그 셋 중 한자리에는 저 수동변속기 차량이 있을 것이다. '굳이 불편하게 수동을 타냐'는 말들도 있지만, 굳이 핸드밀로 커피를 갈거나, 간편한 폰카메라를 두고 굳이 카메라를 쓰는 것으로 수동변속기에 대한 애호를 비유할 수 있겠다.
그저 커피나 사진이라는 결과물만 필요한 사람은 원두를 살 때 갈아달라 하거나, 폰에 있는 카메라로도 만족을 할 것이다. 그러나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즐거움은 커피나 사진과는 또 다를 것이다. 그저 목적지에만 가는 이동수단이라면 자동변속이 편하겠지만, 운전의 재미는 수동변속을 따라올 수가 없다.
와이프는 이번에 손뜨개로 가디건을 직접 지어 입었다. 뭐 가방이나 목도리 같은 것은 앉은자리에서 뚝딱 나온다. 그럴 거면 사서 입는 것이 실값, 품값보다 싼 게 아니냐는 말을 하겠지만, 와이프도 직접 옷을 만들면서 모든 과정을 즐기고, 결과물로 뿌듯함까지 얻는 두 개의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수동변속기도 그렇다. 이런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말 200여 마리의 힘(200마력)을 내 오른손과 두 발의 협응으로 1톤이 훌쩍 넘는 차를 연주하듯 모는 것이다. 클러치를 섬세하게 다루지 않으면 곧바로 울컥울컥 말을 타기도 하지만, 아바타가 도루쿠막토를 다루듯 서로 교감하고 맞춰가기 시작하면 세상 그만한 물아일체의 부드러움이 또 없다.
사람은 33살이 되면 더 이상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아무래도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과 그 안에 깃든 추억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마흔여섯이 되도록 여러 차를 타봤지만, 오래전에 탔던 수동변속이었던 레간자가 제일 그립다.
이제는 필수가 되어버린 화려한 옵션사항 따윈 필요 없다. 공조기가 수동이어도 상관없고, 열선핸들이나 엉따가 없어도 된다. 전자식 제어니 뭐니 다 필요 없다. 오히려 단순한 게 고장도 적고 연비도 좋다. 나는 그저 오직 차에 수동변속기만 달려 있으면 된다. 으, 한대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