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Jan 08. 2024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근을 했다. 들리지 않아야 할 소리가 들린다. 환풍기가 밤새 돌아간 것이다. 뭐 큰일이야 있겠냐 싶겠냐만, 나는 차가 막히는 퇴근길에서도 뭔가를 끄지 않은 것 만 같으면 나는 차를 돌려 사무실로 돌아간다. 그런데 매번 켜놓은 것만 같던 환풍기나 난방기구 또는 서큘레이터 등은 돌아와보면 늘 꺼져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일 없는 듯 출근해 보면 뭔가가 돌아가고 있을 때가 있다. 밤새 환풍기가 돌아갔다거나, 밤새 불이 켜져 있었다거나, 에어컨이 하루 종일 돌아갔다. 출근하며 이렇게 뒤늦게 알게 되면 제대로 끄지 않았다는 불편함과 밤새 아무 일 없었다는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이 책의 저자는 어느 날 뇌출혈로 인해 좌뇌의 기능이 멈췄다고 한다. 끊임없이 사고하고 판단하는 좌뇌의 '재잘거림'이 사라진 순간 물론 두려움도 있었지만, 마음이 고요하고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자유로운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재활을 거쳐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요즘에는 다시 좌뇌가 재잘거리기 시작했으며, 좌뇌의 존재 없이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하루에 좌뇌에게 30분의 재잘거림(고민, 생각, 판단 등)의 시간만을 준다고 저자는 말했다.


   나의 좌뇌는 유독 재잘거림이 심한 편이다. 판단하고 생각하고 계산하는 등의 활동들이 늘 좌뇌에서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는 나는 좌뇌가 발달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그릇이 작은 소형차 수준이라 시속 100km를 달리려고 뇌의 RPM을 항상 풀로 돌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애초에 고배기량이었다면 1000rpm 약간 위에서 잔잔하게 유지되었을 것이다.


   환풍기나 에어컨이 밤새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마음이 편했을까? 물론 별일 아니고 내일 가서 끄면 된다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성격상 마무리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어딘가 불안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내 좌뇌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낸다. 이게 과열이 되면 어쩌고 저쩌고, 먼지라도 있어서 불이 붙으면 어쩌고 저쩌고, 이게 모터가 나가면 어쩌고 저쩌고, 충전이 너무 많이 되면 불도 난다던데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이 좌뇌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차를 돌리거나, 네댓 번은 모든 게 꺼져있는지를 확인하고 퇴근한다.


   피곤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룰루랄라 출근하고 24시간 돌아간 기기들을 맞닥뜨리면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전까지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또 잘못 적혀있는 서류들, 오타가 보이거나 고객의 이름을 잘못 적어 보낸 메시지 등을 나중에 발견했을 때도 그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발견하는 순간 등골이 조금 서늘해지기도 한다.


   결론은 실수가 있었지만 뭐 어쨌든 잘 지냈고, 실수를 알게 된 순간부터 불편해진다. 실수 때문에 내가 불편한 게 아니라 그걸 알아서 내가 불편한 게 맞는 것 같다. 뭐 사실 그렇게 큰일도 없는데 말이다. (다행히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좌뇌의 재잘거림이 없이도 살아본 이 책의 저자 '질 볼트 테일러'의 말에 귀 기울여본다. 이 책을 보며 나의 좌뇌가 정신없이 재잘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좌뇌의 쓸데 없는 상상력에 웬만해선 속지 않으려 하고, 그냥 한번 더 웃어 넘기고, 엉터리 춤이나 한번 더 추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살려고 한다.


   가뜩이나 늙으면 걱정이 더 많아진다는데 미리미리 마음 고쳐먹고 훈련하고 늙을 준비를 해야겠다.


https://brunch.co.kr/@jaemist/415

작가의 이전글 의식의 흐름대로 마구 써재끼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