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생존기
작년 겨울 어느 날 새벽 3시경 극심한 허리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아내가 깨지 않도록 옷방으로 조용히 넘어와 어찌할 줄 모르는 아픔에 연신 뒹굴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119에 연락할 정신도 없었다. 손에 쥐어지는 옷가지를 대충 두르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시동을 걸었다. 새로운 도시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되어 응급실로 향하는 길을 몰랐지만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실 입구에 간신히 도착해서 안내직원에게 “허리가 너무 아파요”라며 힘껏 조용히(?) 소리치며 주저앉았다. 안내직원의 도움으로 응급실 병상에 누워 진찰과 CT를 찍었다.
진단 결과는 요로결석이었다.
가장 세게 진통제를 투여해도 통증 조절이 안되어서 거의 다섯 시간을 병상에 누워 발버둥을 쳤다. 나는 웬만한 통증은 잘 참는 편이었지만, 이건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아마 누가 나에게 와서 차를 넘겨주면 고통을 멈춰주겠다고 제안했다면, 볼 것도 없이 키를 던져줬을 것이다. 다행히 5시간 만에 결석은 배출이 되었고, 전쟁은 끝이 났다.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정말 죽을 만큼 아팠다. 그렇게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어보니,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한 적은 없었지만, 결론이 자연스레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오늘은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다.
오전에 일을 좀 해두고, 검사 시간에 맞춰 병원에 왔다. 도착하고 몇 가지 검사를 진행하고 대기실에서 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로비에 그리고 진료과 대기실에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보인다.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모여있는 곳이 있다. 그곳은 아마도 여기 종합병원일 것이다. 다들 각자의 사정(생로병사)으로 병원을 찾아 필요한 진료와 치료를 받는다. 그것에 따른 각자의 감정(희로애락)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아프며, 또 아픈 환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결국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인간임을 깨닫는다. 유명한 영화 대사인 "뭣이 중헌디."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래 정말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뒤돌아보면 재미든, 목표든, 물건이든, 관계든, 인정 욕구든 그 무엇이든 그것을 얻기 위해 애썼던 기억들이 많다. 그때 그렇게 나에게 중요했던 것들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유의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의 욕망들도 많을 것이다.
그때는 옳은 선택이었지만 나중엔 틀리기도 한다. 그때의 실패가 나중엔 실패가 아니기도 했다. 득과 실은 언제든 자리를 바꾼다. 늘 바뀐다. 시간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그때그때마다 느꼈던 과거의 희로애락도 시간이 흘러가며 달라질 수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그 순간에 크게 기쁠 것도 없고, 격하게 화낼 것도 없고,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시간은 또 흘러가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과 그 감정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나는 또 무엇에 집착하는지, 어떤 감정에 취해 있는지 잘 들여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