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연휴는 대한민국 헌법이 허용한 고칼로리 음식이 허용되는 기간이다. ㅋㅋ 일 년에 딱 두 번, 추석연휴 그리고 이번 설 연휴다. 평소에는 먹지 못하는 온갖 음식을 상다리가 버티는 동안 어서 먹어 치워줘야 한다.
이럴 땐 탄수화물은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그래서 쌀밥은 가급적 먹지 않고, 고기와 채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꼬치전 위주로 공격한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온 이 음식들 중 손이 많이 가거나, 철저히 단가가 높은 녀석 위주로 공략해야 한다.
아주 연하디 연한 소고기구이, LA갈비와 겉절이스러운 샐러드가 나의 최애 메인이었다. 고기와 샐러드를 적절히 분배하여 먹고, 조금 재미없다 싶을 때 전과 LA갈비를 먹어준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대화를 최대한 삼가야 한다. 명절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대화를 나누긴 하지만, 식사 중 대화는 금물이다. 그리고 대화를 이끌어나가기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최대한 대척점에 위치하거나 상모서리 쪽에 앉아야 한다.
대화를 한다는 건 그만큼 고기를 먹을 시간이 줄어든다는 뜻이며, 다른 경쟁자들(?)에게 고기와 꼬치전을 뺏길 위험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대화에 끼지 않으며, 누군가 질문을 하면 마음에 안 드는 소개팅 상대를 대하듯 ‘예, 아니오’로만 답한다.
방심하고 대화가 이어질 만한 구체적인 질문이나 긴 답변을 했다간 소중한 굴비 등살이 뜯겨 나가고, 몇 개뿐인 꼬치전이 줄어드는 참극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렇다고 너무 적극적으로 먹다간 발각되기 쉽기 때문에 최대한 큰 놈을 집어와 젓가락질 횟수를 줄인다.
(지금은 나가지 않는) 동문회 같은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자리부터 구석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때도 소위 '떠벌이'를 피해 앉아야 한다. 특히, 술에 취하면 많이 길어지는 사람들을 피해야 한다. 모른 척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을 계속 걸기 때문에 고기 확보에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말이 없는 노잼 멤버들 근처에 앉으면 좋다. 떠벌이들은 이쪽을 웬만하면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술쟁이들의 장점이 있다면 안주(고기)를 덜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등잔밑 효과를 바라고 앉았다가 술을 먹지 않는 나는 물 잔으로라도 계속 건배에 동참해야 했던 불편함에 다시는 등잔 밑에는 얼씬거리지 않는다.
웬만하면 비흡연자 근처에 앉아야 한다. 흡연자들은 여러 차례 다 같이 담배 피우러 나가기 때문에 나만 덩그러니 남아 고기를 먹는 것을 발각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혼자 꾸역꾸역 먹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나만 빈테이블 구석자리에서 열심히 먹고 있는 것을 들켰던 경험이 있다.
모임 인원이 대략 절반쯤 왔을 때 이런 작전을 펼치기 좋다.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내쪽으로 와야 할 사람이나 멀리 보내야 할 사람을 살피며 조용히 자리 이동을 한다. ㅋㅋㅋ 그날 메뉴가 소고기라면 더 적극적으로 자리배치에 나서야 한다.
늦게 왔다면, 멀리서 때로는 살짝 문틈으로 테이블 배치를 보고 떠벌이를 피해 최대한 구석자리에 끼어 앉으면 된다. 이때 여기 빈자리 있다고 누가 불러서 갔는데, 좋은 자리가 아니라면 바로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면 된다. 그사이 누군가 그 자리에 술잔 들고 자리 잡으면 베리 땡큐다. ㅋㅋㅋ
나는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나의 회비 몫을 챙기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대놓고 '나는 술을 먹지 않기 때문에 고기를 더 먹겠다' 말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ㅋㅋㅋ
다들 거나하게 취해있을 때는 고기를 추가하기 좋다. 이때 살펴야 하는 것이 총무의 정신줄이다. 총무가 먼 쪽에서 대화에 빠져있을 때 특히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가 절호의 기회이다. (냉면이나 된장찌개 같은 후식을 시키면 고기를 추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재야 한다.)
총무의 촉이 살아있을 때는 스윽 화장실 가는 척 카운터로 가서 조용히 시켜야 하며, 추가 고기는 내가 들고 들어오면 완전범죄를 도모할 수 있다. 나와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동지가 있다면 모든 게 우리의 혁명은 쉽게 성공한다. 구석 자리에서 바닥에 내려놓은 고기를 한 점씩 올려 구우며 조용한 승리를 맛본다.
그런데 뭔가를 정신없이 먹을 때는 주의사항이 있다. 엊그제 나는 정신없이 고기를 먹다가 혀를 씹었기 때문이다.
혀를 깨물려면 적어도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은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한낱 돼지고기 목살을 먹다가 혀 깨물고 자결할 뻔했다. ㅋㅋㅋ 46년 인생 혀 씹은 것 중에 제일로 아팠다. 혀 뒷면에 거의 구멍이 나다시피 할 정도로 심하게 씹었다. 아픈데 자꾸 마누라는 혀를 내밀어 보라고 해서 엄청 짜증이 났다.
그래서 어제 본가 설날 밥상에서 부모님이 사 온 소고기 구이를 꾹 참고 먹었다. 오래 달리기를 할 때 사점(dead point)을 넘으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고 한다. 다행히 어제 나의 혀의 통증은 식사 도중 사점을 넘겼고, '부모님이 산 비싼' 소고기를 충분히 먹을 수 있었다. ㅋㅋㅋ
그래서 방심은 금물이다. 방심하고 이렇게 혀를 씹었다간, 상다리가 버티고 있는 이 순간을 놓치고 다음 명절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 내 회비 몇만 원은 고기 몇 점 먹지도 못하고, 다른 놈들 술값으로 허무하게 날아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