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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Mar 14. 2024

다시 만난 ‘첫사랑’

   누가 내 첫사랑이었을까?

   태어나고 처음으로 좋아했던 A였을까? 2차 성징이 지나고 처음 좋아했던 B였을까? 그게 아니면 처음 사귀었던 C일까? 가장 오래 사귀었던 D였을까?


   남자는 죽을 때까지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마흔여섯이 되어보니, 그건 잊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정도 기억력은 있다'라고 하는 게 정확할 듯하다. 그냥 기억이 나는 거다.


   사람은 으레 힘들었던 과거도 미화한다. 그래서 연애에 대한 과거의 기억은 얼마든지 '추억'이 될 수 있다. 아름답게 보면 추억이고, 서툴렀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쉽기도 한다.


   대개 첫사랑은 아직은 현실살이에 눈을 뜨기 전의 추억이다.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도 좋았던 것이다. (집안과 스펙, 연봉 등은 첫사랑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냥 좋았다'

   '그냥 자꾸 생각이 났다' 정도가 가장 그럴듯한 첫사랑의 감정일 것이다.


   Childhood Sweetheart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 나온 좀 귀여운 표현이다. 번역하면 '소꿉친구'정도가 될 것이다.


   나에게도 유년기부터 같이 놀던 Childhood Sweetheart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집에 자주 놀러 가곤 했다. 2학년쯤이었나? 개학을 했는데 그 아이가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고, 다른 도시로 전학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의 나도 그 아이가 그냥 좋았고, 떠난 이후에도 자꾸 생각이 났다. 이 두 감정의 기준으로는 그 아이가 나의 첫사랑이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그 아이가 잊히지 않고 문득문득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 그 도시 출신의 친구들에게 그 아이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했다.


   나는 대학에 가고, 당시 유명했던 '아이러브스쿨'의 도움을 받아 그 아이를 결국 찾았다. 다시 만난 그날,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의 얼굴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남아있는 웬 성인 여자가 내 앞에 웃으며 나타났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노라와 해성이 서로에게 ‘와'라고 밖에 할 수 없던 반가움과 낯섦의 공존하는 감정은 나도 뭔지 알 것 같았다.


   A4 용지 절반도 못 채울 만큼 희미한 어린 시절 기억만을 공유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10년이 넘는 동안 업데이트 되지 않은 일상을 들려주며 낯섦을 조금씩 메워갔다.


   그 후로 언젠가 내가 대쉬(그 당시 표현)했을 땐 거절당했지만, 반년 뒤에 그 친구의 고백을 시작으로 Childhood Sweetheart에서 Childhood를 떼어냈다.


   하지만 대학 1학년으로 복학한 나와 대학 4학년이었던 그 친구는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많다고 생각했던) 공감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갭들이 느껴지기 시작했을 땐, 서툴렀던 둘 사이에 잡음은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그 아이의 입에서 이별의 말이 나왔다.

   아팠고, 꽤 오래갔다.


   싸이의 노래 '어땠을까'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너와 난 지금까지 행복했을까?

   마지막에 널 안아줬다면, 어땠을까?


   이별은 ‘여전한 미숙함’에서 시작한다.

   야트막한 언덕길에 다리가 아프다고 징징대는 애처럼, 그때의 '그 20대 초반 아이들'에게는 그 언덕이 너무 가팔랐던(가팔라 보였던) 것이다.


   그 친구를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잡을 수 있었을까?

   오래갔을까?

   결혼했을까?

   모르겠다.


   다만 그 언덕길이 더 어른이 된 지금으로서는 웃음이 나올 만한 별거 아닌 경사였기에,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느껴질 뿐이다.


   그러고 보면 한창 사귈 때 이별이란 걸 상상하기도 싫었던 그때, '혹시나 헤어지고, 만약 서른 살에 둘 다 혼자라면 결혼하자'던 소꿉놀이 같은 약속만 봐도 그 20대 초반 역시 '부부놀이'하던 유년기와 별 다를 게 없는 Childhood Sweetheart가 아니었을까?


   헤어지고 몇 년 후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서 그 친구를 우연히 마주쳤다. 교직 이수로 선생님이 될 줄 알았는데, 그 친구는 뜬금없는 군인이 되어있었다. (반갑게 인사하며 악수를 했는데, 거친 손의 피부와 굵어진 손마디에서 다시 낯섦을 느낄 수 있었다.)


   헤어졌을 땐 서로 방향이 같았는데 갑자기 어긋났다고 생각했지만, 어딘가로 그어지던 그 아이의 선과 나의 선이 잠시 교차했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알게 되었다.


   그래도 20대 유년기(?)에 다시 만나 순수했던 기억을 나누고, 서로 어른이 되는데 필요한 실수를 여전히 순수하던 시절에 함께 주고받았던 Childhood Sweetheart 그 아이가 내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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