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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Mar 21. 2024

일상의 '랑데뷰', 소개팅

소심남의 연애 비법

   우주기지와 우주선은 약속된 시간에 정해진 지점에서 만난다. 이렇게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는 것, 우리는 그것을 랑데뷰라고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그런 랑데뷰는 일어난다.


   업무 미팅이나 사교모임 같은 건 흔한 일이기에 랑데뷰라는 표현을 쓸 만큼 뭔가 특별함이 없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우리 일상에 특별한 만남이 하나 있긴 하다.


   그건 소개팅(또는 첫 데이트)이다.

   나는 소개팅이나 연애가 성사되지 않을 때마다 궁금한 것이 생겼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내 관심 밖의 여자는 나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날 이 단순한 사실의 이유가 몹시 궁금해졌다.


   잘 보이려고 해도 상대는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고, 정말 남자처럼(?) 편하게 대한 여자들에게 의외의 애프터나 고백을 받기도 했다. 잘 보이려고 했을 때보다, 잘 보일 생각이 없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그린라이트를 받았다.


   (굳이 말하자면) "저렇게 괜찮은 애가 나에게 관심이 있다고?" 할 정도의 상대가 나를 좋아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다고 모든 상대 이성과 연애의 진전이 있었다고 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나의 '부자연스러움'으로는 단 한 명도 연결되지 않았다.


   남자들은, 특히 서툰 남자들은 '여자의 꾸밈'에 잘 속는다. 여자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도 얼마든지 화장 make up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남자들은 그 '화장한 모습'에 꽂힌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런 남자들을 전문용어로 금사빠(학명: homo geumsappa)라고 한다.


   그래서 대개 서툰 남자들은 감정 전개가 여자보다 빠르다. 그래서 상대가 마음에 들면 들수록 조급해져서 섣부른 행동을 하기 쉽고, 상대의 마음을 돌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진다.


   사실 연애비법서 같은 책을 읽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나 같은 연애 초급자가 읽었을 때 이런 느낌이었다.


   "마운드에 서서 홈플레이트 방향을 기준으로 우향우 한 자세에서 고개를 좌측으로 돌려 포수가 다리사이로 보여주는 손가락 사인을 보며, 글러브 속에서 실밥의 방향을 만져 포수가 요구하는 구질로 공을 그립 한 다음 1루를 살짝 보면서 주자와 1루 베이스와의 리드 간격을 살피고, 한번 호흡을 들이쉬고 내쉰 뒤 잠시 숨을 멈추고 왼 무릎을 올려 무게중심을 위로 올렸다가 홈플레이트 방향으로 왼발을 내디딘 다음, 상체의 무게중심을 마운드 앞쪽으로 던지듯 이동하는 동시에 어깨와 팔의 각도를 수평으로 전진하다 원심력의 방향으로 포수와 합의한 코스로 공을 뿌리는데 이때 시선은 공을 포수의 미트 방향을 보며 손가락 끝으로 채는 듯한 기분으로 던진다."   


   복잡하지만 투구의 핵심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 무게중심을 공으로 최대한 옮겨, 그것을 원하는 지점에 던져 넣는 것이다. 이것을 중심으로 보면 모든 사소한 동작의 이유가 자연스레 설명이 된다.  


   소개팅 같은 만남의 핵심은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make up을 한 채로도 make up에 가려진 서로의 모습을 하나둘 꺼내가며 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급함부터 다스려야 한다.


   하나만 하면 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상대를 마음에 들지 않게 만들었다. 주식에 비유하자면, 상대에 대한 치솟는 마음에 거품이 꺼지도록 숏(공매도)을 치는 거다.


   나 같은 경우는 상대가 make up 하느라 애쓴 흔적들을 보려고 했다. 우아하게 호수에서 유영하는 아름다운 백조의 물아래서 '겁나게' 비비며 애쓰는 '인간다움'을 찾았다.  


   짱구같이 그려진(문신한) 눈썹을 본다던가, 눈두덩에 떨어진 마스카라 덩어리, 치아 사이에 낀 붉은 립스틱, 흰 블라우스 목에 드리워진 때라던가, 왼쪽으로 돌아간 미니스커트, 높은 구두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종아리 근육에서, 파운데이션을 열심히 두들겨 팬 허연 얼굴색과 목의 피부색 차이 등에서 여신(?)이 아닌 여자, 여자보다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상대는 '여자'다.

   그렇지만 여자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이성을 대하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서툰 소심남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과제다.


   상대의 눈썹이 특히 웃음 버튼이었다.

   애쓴 흔적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이다. 눈썹만 집중해서 보면 (소심남이 정말 어려워하는) 상대의 눈을 똑바로 시선 맞춤하는 것 같은 효과도 있고, 뭔지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서 긴장이 풀어졌다.


   좀 반칙일 수 도 있지만,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은 상대에게는 상대가 콤플렉스를 느낄 만한 얼굴 부위를 계속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도도하게 높은 벽을 낮출 수도 있었다.


   만나는 모든 상대의 호감이 목표는 아니었다.

   관심 있는 상대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뚝딱거리다 끝나는 반복되는 아쉬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할 때 연애가 한결 더 쉽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연애가 시시해졌다.


   그래서 다 그만두고, 술담배 끊고, 반복된 쇠질과 수영으로 몸 만들고, 사업에 집중하며 나에게만 집중했다. 비혼을 외치며 초식남처럼 살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한 여자를 만나 저런 기술(?)하나 부리지 못하고 '바보처럼' 그저 좋아하다 보름 만에 청혼하고 이듬해 결혼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지금이다. 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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